[NGO사람들]납세자 권리보호 앞장선 無給일꾼 하승수변호사

  • 입력 2000년 5월 7일 15시 23분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아이까지 낳고 사는 첫사랑 여인을 잊지 못하는 사내. 어느날 그는 가난 때문에 보내야 했던 옛 애인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런 과감한 행동마저 가능케 한 그의 성공, 그 외피는 '변호사'라는 직업이다.

다름 아닌 요즘 한창 방영중인 TV 드라마 얘기.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요컨대 경제적 부와 사회적 신분상승.

그런데 여기 조금은 색다른 변호사가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신림동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에 살며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일을 한다. 그렇게 하는 일이라는 게 '조세개혁'과 '정보공개청구' 등 시민이자 납세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자는 운동. 오로지 공익을 위한 활동이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하승수(河昇秀·32) 변호사. 아직 대학 4학년(서울대 경영학과 87학번)이었을 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이어 2년이 채 안되는 준비기간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나도 붙기 어렵다는 굵직한 국가고시에 연달아 응시한 연유를 물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후에 넉달 정도 회계법인에 취직을 했었는데 애초에 생각했던 일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왕에 실용적인 길을 가기로 한 마당에 법을 공부해서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길을 찾기로 했죠. 그 당시 태동하고 있던 시민운동을 보면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렇다면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철썩 합격한 비결은? 그는 단연코 '운'이란다.

믿기 어려운 그 '운'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제대로 작용했다. 흔치 않은 세법전문가로서 세입과 세출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납세자들이 나서서 바로잡자는 '납세자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

사법연수원 1년차였던 96년 5월 우연히(그의 표현을 빌자면) 참여연대와 인연이 돼 초기에는 소액주주운동을 돕다가 96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조세개혁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작년말부터는 아예 법률사무소도 때려치우고 참여연대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있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직 젊은데 뭐'라는 생각으로 이쪽 일에만 전념하기로 했죠."

'조세개혁팀'에는 하변호사 외에도 회계사와 세무사들이 참여,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간 세부담의 불공평문제와 재벌의 변칙 상속·증여 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 결과 거둬들인 성과만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98년에는 전문직 사업자(변호사, 회계사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으며 99년에는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 폐지 및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 도입 그리고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에 있어서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해 들어서는 자가용 승용차에 대한 면허세 폐지와 중고자동차에 대한 자동차세 부담완화를 주장,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국가에서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도 감시에 나섰다. 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되면서 '정보공개사업단'을 구성해 정보공개청구운동을 본격화한 것.

"정보공개란 환경 교육 국민건강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국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만, 특히 국민의 세금을 쓰는 예산지출에 있어서 낭비나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투명한 환경에서는 '낭비, 비리, 비효율'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죠."

특히 정보공개사업단에서는 낭비성 경비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국가기관장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판공비 공개운동을 꾸준히 벌여왔다. 이제는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어 전국적인 운동이 되어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올해 2월 기존의 조세개혁운동과 정보공개운동을 좀더 체계적으로 벌이려 납세자운동본부가 발족되고 하변호사는 실행위원장이라는 총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하변호사의 관심사가 납세자운동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는 지하철 지연사고 당시 해당 지하철을 타고 있었던 인연으로 소송을 맡아 '10만원 지급'이라는 승소 판결을 받았고 올해 초에는 '경찰의 불심검문 과정에서 학생증 제시를 거부한 이유로 연행한 것은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또한 사시 정원제와 관련, 현재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법수혜자로서의 크고 작은 권리들을 대신 찾아준 셈.

그렇다면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뭘까.

"일단 납세자운동 측면에서는 '균등할 주민세 폐지와 목적세 정비 운동'을 추진하고 세법을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운동도 펼 계획입니다. 정보공개청구운동의 지역확산을 위한 네트워크 구성등의 활동도 할 거구요. 그리고 좀 더 멀리는 '공익법운동'을 준비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소송이나 입법운동을 펴는 것을 '공익법운동'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변호사들을 모으고 또 돈도 모아서 일종의 '공익법센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인데 현재 어느 정도 진행중입니다."

한마디로 시민단체에서 계속 활동하며 공익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얘기. 듣고 보니 지금도 무급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데 은근슬쩍 수입이 걱정된다.

"앞으로 1∼2년간 생계유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은 있어요. 책을 몇 권 써서 인세로 받는 것도 조금 있고. 나중에야 파트타임으로 (시민단체)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걱정 안 합니다. 아내도 직장이 있으니까요."

현재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아내와는 대학 동아리(사회철학연구회)에서 선후배로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 세살 난 딸아이를 두고 있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아내와 딸아이 때문일까. 하변호사는 교육문제와 인권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인권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소수자의 인권문제나 사생활 보호,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의 인권문제나 아동인권보호문제 등 숨겨져 있는 인권문제를 발굴해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렇듯 시민운동이라는 큰 틀 안에서 앞날을 기획하는 이유, 그 각별한 보람과 매력을 물었다.

"시민운동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 많구요.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딱딱하고 어찌보면 재미없거든요. 보통 소송에서 이겼을 때 쾌감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공익적 활동에서 얻는 즐거움에 비할 수가 있나요. 공익소송에서 이겨 시민들의 권리를 되찾아줬을 때 그리고 시민들이 우리가 하는 운동에 공감하고 격려해줄 때 느끼는 보람이란, 정말 너무나도 크지요."

오늘도 아침 9시 30분이면 그는 어김없이 참여연대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리고 그의 일을 한다. 잊고 있었던, 혹은 잃어버린 시민들의 권리, 그것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일을.

김경희/동아닷컴 기자 kik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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