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희/'386' 정치인은 없다

  • 입력 2000년 4월 25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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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386’은 없다. 요즘 각광받는 386세대가 정치세력으로서는 실체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며칠 전 민주당의 한 ‘낙선 386’이 김대중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큰절을 하는 사진이 각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젊은 세대에 걸맞지 않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가부장적 관계’라는 비난과 “386이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이 일을 두고 지금은 한나라당으로 옮아가 이번 총선에 출마했던 과거 평민당의 한 의원이 당시 김대중총재를 ‘어버이’라고 지칭했던 일을 상기시키는 ‘시대착오적 사건’이라고 촌평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모든 ‘386’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럴 리도 없다. 그러나 요즘 젊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크로스보팅’ ‘여야를 넘어선 협의체 구성’ 등을 논의하고 훈장이라도 단 양 자랑스럽게 어울려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첫째, 젊음이 그들을 묶어주는 정체성의 요체라면 소속정당은 그들에게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출신지역과 당선 가능성을 따져 선택한 임시변통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을 걸 만한 무엇이 그 당에 있다고 판단했던 것인지 먼저 답해야 한다.

둘째, 길지 않은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자의건 타의건 ‘세대’의 간판을 걸고 등장했던 정치인들의 뒷모습을 기억하는지도 의문이다. 4·19세대 중에는 유정회로 정치적 입신을 꾀했던 인물도 있고 6·3세대 중에는 정파를 옮겨가며 자신의 머리를 이곳저곳에 빌려주던 이도 여럿 있다. 간판은 간판일 뿐 결국은 제각각이더라는 얘기다.

셋째, ‘386’의 ‘8’이 뜻하는 ‘80년대 학번’의 함의(含意)도 문제다. 5공 권위주의 정권 치하에서 자신을 ‘직업운동가’로 규정하고 ‘고민의 결과’라기보다 ‘정치공학’의 시각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 세대는 일반적으로 ‘내면이 허약한 세대’로 평가된다. 또다시 ‘386 간판’ 에 의탁해 집단화하기보다 다른 틀로 정치적 비전을 형성하는 게 생산적이 아닐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런 의구심 끝에 자연스럽게 독일의 68세대를 떠올리게 된다. 최근 소개된 한 68연구서는 “독일의 신좌파는 독일의 정치지형을 영구히 바꿔놓았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재야세력과 10년 후 등장할 녹색당의 무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68년을 전후해 서독 전역을 질풍노도로 뒤덮었던 이들은 70년대를 온전히 환경 여성 반핵 등의 신사회운동에 투여해 자리잡은 뒤 비로소 70년대 말 녹색당을 결성, 오늘날 사민당 연정의 일원으로 집권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세대’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그러나 상당수의 ‘386 정치인’들이 ‘학생운동→공백기→정치권 진입’의 행로(行路) 속에서 이미 경험의 공감대를 상실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축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386 훈장’ 뒤의 새 국회의원이 아니라 ‘의욕적인 정치운동가’ ‘성실한 의정(議政)활동가’로 거듭날 새 얼굴들에게.

김창희<사회부 차장>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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