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규철/남북회담의 前과 後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5분


1994년 6월말 김영삼대통령은 북한 김일성주석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신문, 방송사의 정치부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에 대한 참석자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그때 기자는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지금 정부나 사회전체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 속에 흥분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다녀온 후’의 일도 중요하다. 실제로 정부로서 더욱 신경을 쓸 일은 정상회담이후의 파장이다. 지금까지 국민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 뻔하다. 한마디로말해서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북인식의 혼란과 이에 따른 내부적인 혼돈을 수속(收束)해나가는 일도 정상회담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6년이 지난 오는 6월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평양회담을 앞두고 있는 김대중대통령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회담전의 일에 관해서도 주문하고 싶은 것이 많다.

남북간 사업의 성패는 상대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분단 52년 동안 간헐(間歇)적 대화에서 얻은 결론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민간차원의 경협사업도제한된 범위지만 상호신뢰가 가능했던 사업들이다. 북측 입장에서 보면 정치체제에 대한 위협이 적으면서 경제적 실리를 취할 수 있었던 분야다. 6월 회담을 앞둔 정부의 기본입장정립 논의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지금 남쪽의 분위기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란 명분에 너무 들떠 있다. 보도매체가 전하는 갖가지 추정은 통일 후의 혼란스러움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 식이라면 이번에 북한의 모든 문을 한꺼번에 열자는 것으로 북측은 생각할 수도 있다. 논의대상도 너무 벌려서는 안된다. 정치분야는 현 상황에서 양측 모두에게 논쟁의 대상이다. 이산가족상봉만 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사업이 분명하지만 북측으로서는 대단히 민감한 정치사안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정상회담의제는 실무자회담에서 신중히 논의되겠지만 비정치적이고 양측의 경제적 실리에 부합하는 분야에 가급적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경협문제라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민간차원과 다른 당국간 거래라는 점에서 여론의 여과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의제와 관련해 한반도 관련당사국의 이견이 있더라도 정부는 ‘우선순위에 따른 불가피성’과 ‘남북대화의 보완(補完)효과’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이번 회담이 당장 통일방법론을 논의하는 ‘통일회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그리고 사전에 명확한 선을 그어두어야 할 일이 많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공연한 기대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신중한 보도자세도 말할 것 없다. 예를 들어 남측의 건설적인 주장에 북측이 긍정적인 검토의사를 밝혔다고 하자. 이를 당장‘합의’라고 풀이한다면 결과적으로 사실과 크게 다를 수 있다. 북측은 검토와 합의를 분명히 구분한다. 남북간의 모든 협의는 크고 작은 의견일치를 바탕으로 한 점(點)으로 이어지는 선(線)의 궤적이다. 답답하더라도 스틸사진을 한장 한장 이어가는 인내가 필요하며 한번에 영화필름 찍듯이 풀이해서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특히 앞으로 실무회담에 나서는 대표들의 명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윗사람을 의식한 한건주의는 절대 금물이다. 만에 하나라도 애매한 표현을 유리하게 해석해 추진하는 일이 있다면 정작 큰 회담을 망가뜨릴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경험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실무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앙측 체제에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다. 회담이후의 파장이 북측을 개혁, 개방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면 그만큼 남측에도 여파가 밀려올 수 있다. 실정법상 규정된 북한의 주적(主敵)개념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강경 목소리가 엄존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 아닌가. 이제 첫 고비는 22일부터 시작되는 판문점 실무자회담이다. 우선 신뢰를 쌓자는 회동이라면 ‘통일론’은 아예 꺼낼 필요도 없다. 이 점 북측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평화공생(平和共生)이다. 동서독은 첫 정상회담이 있은 후 통일까지 20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최규철<심의 연구실장>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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