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달력을 바꿨다고! 그레고리우스력에 얽힌 이야기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어! 달력에 구멍이 뚫렸어요' 아브너 시모니 지음/한송 펴냄▼

이탈리아 볼로냐에 사는 총명한 소년 티발도. 우연히 명의사 튜리사누스의 눈에 들어 후계자로 점찍힌다.

때는 1582년. 명문 세인트 요셉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티발도에게 어느날 걱정거리가 생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달력을 개정, 열흘을 없애버리기로 한 것.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생일파티는 티발도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런 그의 열 두 번째 생일이 사라지는 열흘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 어떻게 하지!

16세기의 실제 인물과 상상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그레고리우스력이 생겨나던 무렵의 유럽사회 분위기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달력의 개정이 줄거리의 중심을 이루지만, 정작 책이 더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르네상스시대 유럽 지식사회의 움직임, 이성의 힘을 높이 받들며 일상에서 신비와 마법의 그림자를 거두어내려는 학자와 시민들의 자각이다.

지동설의 합리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는 천문학자 비토리오 선생님, 분만 도구와 옷을 소독해 산욕열을 줄이려 하는 산파 안나 마리 누나 등은 새 시대와 이성의 힘을 대표하는 주인공들. 반면 열흘이 사라지면 농사를 망친다고 믿는 농민들이나, 교황이 사탄에게 속았다며 달력 개정 반대를 선동하는 일 토렌티노 등은 반이성과 비합리의 힘을 상징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생일을 빼앗겨버릴 뻔 한 티발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교황이 볼로냐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티발도는 대표 접견 학생의 대열에 끼어들어 건의를 올린다. “교황님! 생일과 명명일을 빼앗긴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해 주세요. 하늘에 있는 성인들도 자신의 축일을 뺏긴다면 슬퍼하지 않을까요?”

교황은 결국 ‘1582년 생일을 잃게 된 사람들은 기존의 날짜에 축하를 받아도 좋다’는 영을 내렸다. 열흘 동안 축일과 생일이 중복되자 빵집과 사탕가게도 호황을 누렸다. 티발도가 도시의 영웅이 된 것은 물론. 그는 훗날 명의가 되어 의학 속의 미신을 이성과 합리로 대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나. 믿거나 말거나. 박윤정 옮김 7000원.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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