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풍운을 몰고온 '무서운 10대'…비금도 몰고온 이세돌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비금도(飛禽島) 소년’ 이세돌 3단(17)의 염원은 이뤄질까?

98년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지병으로 타계한 아버지(이수오씨)의 모습이 아직도 그의 눈에 생생하다. 이 3단은 “세돌이가 스무살 전에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평소 소망을 ‘유언’으로 여기고 있다.

아버지와 이 3단의 꿈은 올해 중에 실현될지도 모른다. 이 3단은 4일 제5회 LG배세계기왕전 예선에서 이정원 초단을 물리치면서 올해 들어 파죽의 20연승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기원이 최근 발표한 1·4분기 다승, 승률 베스트 10에서도 1위에 올랐다. 고수(高手)들과의 대결이 적었던 게 흠이지만 양재호 9단,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의 남편인 장주주(江鑄久) 9단 등 강자들이 무릎을 꿇는 만만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3단은 이같은 연승을 바탕으로 기성전 왕위전 패왕전 등 무려 7개 기전의 본선에 진출했다.

이 3단은 “운이 따라줘 초반에 좋은 성적을 냈다”면서 “올해에는 타이틀을 꼭 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가 8세 때 이미 전라도 일대에서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을 ‘신동’ 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하면 그동안의 성적은 아쉬움이 크다.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의 비금도. 가장 가까운 도시인 목포까지 뱃길로 1시간반∼2시간이 걸린다. 아마 3, 4단 기력이었던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우던 그는 권갑용 6단의 눈에 띄어 91년부터 4년간 내제자로 있으면서 95년 12세 때 프로에 입단했다. 이 때만 해도 바둑계는 이 3단의 등장을 ‘제2의 이창호’ 탄생의 신호로 여기며 흥분했다. 각종 기전의 본선에서 활약하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타이틀 획득은 쉽지 않았다.

권갑용 6단은 “유창혁 9단도 가르쳤지만 분명히 이 3단의 기재(棋才)는 유 9단 못지 않다”고 말한다. 권 6단은 “힘이 세고 수읽기가 탁월하나 빨리 판단하기 때문에 승부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어쩌면 무관(無冠)에 그친 5년의 세월이 ‘보약’이 될 것 같다”고 평한다.

그와 친형인 이상훈 3단(25)은 평소 함께 바둑을 두지 않는다. 공식 대회에서는 한국기원측의 배려로 한 번도 승부를 겨룬 적이 없었고, 집에서는 바둑의 ‘바’자도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그만큼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고 외롭다.

이상훈 3단은 “3월2일이 아버님의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면서 “세돌이나 나나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리는 게 목표일 것”이라고 말한다.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비금도. 첫 정상을 차지해 새처럼 날아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싶은 게 17세 소년의 꿈이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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