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집]김대중대통령 특별인터뷰

  • 입력 2000년 3월 31일 22시 38분


<회견 참석자>

朴紀正 편집국장

李度晟 부국장서리겸 정치부장

崔永默 정치부 차장대우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건강해 보이시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특별한 비결이 있겠습니까. 맡은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니 건강도 잘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 가리지 않고 먹고, 낮잠도 자고, 운동도 짬나는대로 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신적 활기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일정에 빈틈이 없어 항상 긴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국가대사인 국회의원 총선 얘기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거나 제1당이 되기는 어렵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총재이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상당히 높아 격차가 작지 않은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총선 결과를)두고 봐야겠지만 상당히 걱정됩니다. 선거결과에 따라 지난 2년 동안 이룩한 개혁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앞으로 3년간 해야 할 일도 영향을 받을 겁니다. 지난 2년간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최대한 노력했고 시위 집회 언론의 자유가 과거보다 향상됐습니다. 경제도 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성공적이었고 외환위기도 극복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일류경제로 가기 위해 지식정보사회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정치가 안정돼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정치권이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어요. 국민이 해이해지고 정치가 혼란해지면 중남미처럼 다시 좌절하고 V자형이 아니라 W자형의 경제성장을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를 생각하면 밤잠이 안올 때가 많아요. 국민 여러분이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호소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60%에서 77%까지 나오는데 민주당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낮은 것을 보면 정치를 잘해 신임을 받는다는 함수가 안맞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감정이 여전히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만….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나 예산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언론계나 종교계 지식인들이 노력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런 (지역감정) 의식이 약한 젊은 세대들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총선 중이라 하지만, 아직 대통령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여야의 총재나 선거대책위원장 등이 앞다퉈 차기 대권도전을 선언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괜찮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도 대선 직후에 바로 대권도전 선언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의 경우도 이미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희망과 포부를 가졌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런 포부를 당당하게 국민에게 밝히는 게 바람직한 일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면 대통령후보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국민이 지지하면 당도 그 사람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가 요즈음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민련과의 공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2년동안 김명예총재와 한번도 사이가 안좋은 적이 없었어요. 김명예총재가 기대 이상으로 협조해준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겪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고 합당하자고 했는데 결국 안됐습니다. 또 1인 2표제를 도입해 연합공천을 하자고 했는데 역시 무산됐어요. 그래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다보니 이말 저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김명예총재에게 유감은 없습니다. 그분이 2년 동안 저를 성심성의껏 도와준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자민련과는 정권교체를 함께 이루었고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서로 협력해 큰 성과를 이뤘어요. 앞으로도 양당의 공조가 유지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당은 자민련과의 공조포기를 선언한 바 없습니다. 자민련 출신 각료들도 지금 충실히 근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총선결과가 어떻든 그동안 좌절을 겪었던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 관련 입법을 다시 추진하실 생각이신지요.

“물론입니다. 국민이 바라고 있고 나라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정치가 개혁돼야 합니다. 총선후 정치개혁을 국민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겠습니다. 현행 선거관계법의 문제점과 이번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미흡한 점을 철저히 해결하고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후보자의 납세와 병역문제가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돼 유권자들이 적절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현역의원이 아닌 입후보 지망자들에게도 후보 등록 전의 활동에 있어서 현역의원들과 같은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위헌의 소지가 큰 현행 1인 1표제를 1인 2표의 정당명부제로 실현시켜야 합니다. 인권법과 부패방지기본법도 반드시 제정되어야 합니다.”

―요즘 야당측에서 관권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관권선거는 절대로 없어요. 관권선거를 한다고 우선 국민이 영향을 받겠습니까. 국민은 그런 수준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병역비리 수사도 일부에서 관권개입이라 했지만 지금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와 같은 부정선거, 매표, 공포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금권 흑색선전 지역감정 조장은 남아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런 것들을 청산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대통령께서는 여러 차례 “국민이 지지하면 총선 후 정상회담을 제의하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총선 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남북 간에 상당한 수준의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저는 북한이 2가지 이유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북한도 이제 우리의 진심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남북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교류협력해서 잘 살아가자는 우리의 정책이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에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권하고 있고, 북한을 진정으로 돕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밝히고 있는 점 등이 북한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둘째는 북한의 내부사정이에요.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자면 우리와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지 않는데 세계 어느 나라가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하겠습니까. 실제로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이 북한에 대해서 ‘당신네가 남한과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곳에 가서 당신들을 돕겠느냐’고 말하고 있어요. 북한이 그동안 남한을 따돌리고 다른 나라들과 직접 상대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도 이제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남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나아가 세계의 원조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것이지요.”

―남북관계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임을 시사하시는 말씀같은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경제협력이 확대되는 것 아닙니까.

“현재 여러 경로를 통해 비공식접촉이 진행 중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과 야당에 설명하고 본격적인 남북 당국자회담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습니다. 또 선거 후에는 중동특수(特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북한특수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에 상상할 수 없을 규모로 투자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정상회담의 시기는 언제로 잡고 계십니까.

“여기까지만 합시다.”

―‘베를린선언’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인 듯하면서도 단서를 달고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지요.

“북한이 ‘베를린선언’을 과거처럼 무조건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또 무엇을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계관(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에서 진일보한 제안이라고 평가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신데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당과 정부, 군을 끌고 가고 있고 그래서 대화의 상대로서 평가한 것일 뿐입니다.”

―올해 역점을 둬 해결하겠다고 밝힌 분야가 이산가족문제인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실로 시급한 문제입니다. 당사자들이 고령으로 매일같이 세상을 뜨고 있어요.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도 서로 소식을 모르는 이런 일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습니다. 정부는 출범이래 이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고, ‘베를린선언’에서도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고 북한에 촉구했어요. 그동안 남북 당국 간 대화에서는 별 진전이 없었지만,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교류에서는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상봉 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정부가 적극 지원한 결과입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남북 정부간 대화를 통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 이산가족 교류절차를 간소화하고 경비지원을 확대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북-미관계와 4월로 예정된 북-일 수교교섭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4자회담은 과거에도 북-미 회담과 상관없이 열렸습니다. 굳이 북-미 간 대화와 연결지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련국들과의 대화와 공동노력도 필요합니다. 미국과 중국도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4자회담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요. 지난해 8월 제6차 회담이 있었는데 조만간 회담이 다시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북-미 관계든 북-일 관계든 남북관계의 해결없이는 큰 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이 당사자이므로 문제 해결의 주체도 우리예요. 미국과 일본도 이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금창리 지하시설 사찰, 2차 미사일 발사중단으로 전쟁의 가능성을 억지했고, 남북 간에 상당히 활발한 교류를 이룩했습니다. 우리는 인내심과 일관성,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햇볕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햇볕정책은 중국과 러시아 등 북한의 전통적 우방을 포함한 전 세계가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의 대안이 있겠습니까.”

-탈북자 송환처리문제 등에서 대외교섭력 부재 지적이 있었는데 우리 외교의 체질을 개선, 강화하기 위한 구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탈북자 강제송환문제는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분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될 탈북자들의 신변안전을 고려해서 그동안 드러내 놓지는 못했지만 ‘국민의 정부’ 아래서 4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외교적 경로를 통해 안전하게 남한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이지요. 정부는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중국 러시아와 탈북자문제 해결을 위한 상시협의채널을 구축해 놓고 있습니다. 외교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문제는 탈북자문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과제입니다.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외교력은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현재 외교부 내에서 강도높은 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경제]

-현대그룹 후계자 논란을 계기로 강도 높은 재벌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반면 금융권은 2차 구조조정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경제개혁 추진방향은 어떻게 잡고 계신지요.

“경제개혁은 계속해서 보다 철저히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서 지체하면 그 간의 성과마저 허사가 되고 맙니다. 지난 2년동안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한 결과 대다수의 기업이 재무구조도 좋아지고 경영투명성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익도 사상 최대규모로 실현되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 길이 멉니다. 아직도 재벌이 책임있는 독립경영체제로 탈바꿈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철저히 개혁돼야 해요.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세계와 겨루어서 이길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이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경영관행의 혁신이라든지 기술개발의 고도화가 그 예가 되겠지요. 금융부문 역시 지난 2년간 양적인 측면에서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완료했으나, 질적인 측면에서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미흡한 실정입니다. 금융기관의 내부혁신이 더욱 강화돼야 합니다. 세계의 금융기관과 겨루어서 손색이 없는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정부는 이처럼 양적 구조조정 중심의 하드웨어 개혁에서 질적 경쟁력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개혁을 강력히 독려하고 점검해 나갈 방침이에요. 이것이 올해부터 추진되는 2단계 경제개혁의 방향입니다. 우리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단계까지 발전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물가불안과 인플레가 걱정됩니다. 실제로 정부발표와 달리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많이 올랐습니다.

“금년에도 물가는 반드시 안정시킬 것입니다. 물가안정은 중산층과 서민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라서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 결과 지난해의 경우 소비자물가가 사상 최저치인 0.8% 올랐고, 금년 2월에도 전년말 대비 0.4%가 오르는데 그쳤습니다. 최근 유가상승과 임금인상 추세로 물가에 대한 걱정이 있는데, 연평균 물가를 2.5% 내외로 확고히 안정시켜 ‘저물가-저금리’ 기조를 정착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재정과 통화 등 거시경제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공기업 경영혁신을 통해 공공요금 상승요인을 흡수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 농수축산물의 수급과 가격안정에 만전을 기하고, 전자상거래 확대와 물류표준화 등을 통한 유통구조의 개선으로 가격인상을 억제할 계획입니다.”

-올해 경제성장률과 무역수지 등 거시경제의 목표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민주당은 2002년에 국민소득을 1만3000달러로 올리겠다고 한데 대해 ‘장밋빛 공약’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경제는 견실한 성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7%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던 우리 경제는 금년 1월에도 산업생산이 28.1%가 증가했어요. 중소 벤처기업의 창업도 크게 늘어 금년 1, 2월 중 8대 도시에서 도산한 기업이 월평균 240개 정도인데, 창업한 법인은 월평균 3500개가 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소 벤처기업의 활성화가 경제의 활력을 더해가고 있지요. 무역수지는 1월 중 유가상승과 계절적 요인 등으로 4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2월에는 수출증가로 8억달러의 흑자로 돌아서서 1, 2월을 합해 4억달러의 흑자를 보였습니다. 물가도 안정적입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금년 중 거시경제목표인 경제성장률 6%, 소비자물가 상승률 2.5%, 경상수지 흑자 120억달러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거시경제변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가는 가운데 경제구조 개혁이 차질없이 완수되면, 우리 경제는 안정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2002년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3000달러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거지요.”

[사회·문화]

-그동안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청와대 개방과 국민과의 대화, 시장방문 등의 ‘격식파괴’를 해오셨는데 또 다른 구상이 있으십니까. 예를 들어 미국처럼 아예 청와대 본관까지 제한적으로라도 개방한다든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못했던 과거의 격식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런 생각에서 국민과의 대화와 접촉을 늘려왔습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를 맞아 2월말 ‘인터넷 신문고’를 개통했는데, 국정에 참고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고 억울한 사연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전자민주주의를 더 활성화시킬 생각입니다. 청와대 개방은 보안상의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더 많은 곳을 국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비서실과 경호실에 지시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 영화가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보신 우리영화가 있는지요.

“‘쉬리’를 얼마전에 봤습니다. 높은 수준과 대중성을 말해주는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최근 ‘쉬리’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한 국제영화제를 석권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영화의 저력과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문화산업을 21세기 최후의 국가 승부처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탁월한 문화창조력이야말로 앞으로 막대한 국부를 창출하는 원천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있는 영화인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한층 분발해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오랜 시간 회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J가 보는 JP▼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회견에서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에 대해 ‘애(愛)’와 ‘증 (憎)’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지난 2년간의 협조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앞으로도 공조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공조’가 무산된 데 따른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먼저 JP에 대해 “김종필(金鍾泌)자민련 명예총재와 2년 동안 한번도 사이가 안좋은 적이 없었다”면서 “기대 이상으로 성심성의껏 협조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두 번이나 말했다. 또 JP가 요즘 자신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데에 대해서도 “김명예총재에게 유감이 없다”는 말로 애써 비켜갔다.

그러면서도 자민련이 합당과 연합공천을 위한 1인2표제의 도입을 거부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절제됐지만 농축된 답변에서는 JP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이 배어나왔다. “JP가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씀이냐”는 후속질문에 김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함구했다. 아무튼 김대통령은 양당공조 유지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또 회견 내내 내각제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조복원을 위해 JP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이 읽혀졌지만 그 희망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DJ가 보는이인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견 내용 중 정치권에서 화제가 될 대목은 단연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선거대책위원장에 대한 언급이었다.

김대통령은 회견에서 이위원장에 대해 ‘상당히 놀랄 정도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대통령은 여야의 당지도부가 이번 선거과정에서 잇따라 차기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이위원장의 경우도 그런 포부를 당당하게 국민에게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을 이었다.

김대통령의 설명 중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그렇게 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면 대통령후보로 성장하는 것이며 국민이 지지하면 당도 그 사람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부분.

언뜻 원론적인 얘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후계구도문제에 대해 ‘공정경쟁’ 방침 이외에는 어떤 말도 삼가던 김대통령으로서는 파격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은 셈이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위원장에 대한 김대통령의 신임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두텁다”면서 “김대통령이 후계구도와 관련한 의중의 일단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그는 또 김대통령이 내각제를 포기하고 대통령선거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덧붙였다.

<최영묵기자> ymoo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