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집/지구촌여성21]핀란드대통령 할로넨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31분


올해 2월 6일 북유럽 핀란드에서는 새 밀레니엄의 변화를 상징할 만한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집권 사민당의 타르야 할로넨(56)이 여성후보로서는 핀란드 사상 처음으로 임기 6년의 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할로넨의 당선은 지구촌 여성 정치사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핀란드는 200명의 국회의원 중 37%인 74명이 여성이고 각료 18명 중 40%가 여성일 정도로 여권신장이 두드러진 나라. 1906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공직 진출을 인정했던 나라도 핀란드였다. 이런 나라에서조차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까지거의 1세기가 걸린 셈이다.

핀란드 여권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할로넨은 특히 파격적인 정치성향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그는 핀란드 국민의 90% 이상이 신자인 루터교를 믿지 않는다. 자신은 동성연애자가 아니면서도 80년대에 동성연애자협회 회장을 지낸 특이한 경력도 있다. 한번 결혼했지만 딸 하나를 낳은 뒤 이혼했으며 현재는 다른 사람과 동거하고 있다.

할로넨이 선거 유세 도중 내건 공약도 일반의 예상을 벗어난 것들이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어떤 나라보다 잘 돼 있는 핀란드에서 그는 ‘인권 및 소수집단의 권리 옹호’와 ‘복지 국가 유지’를 최우선 공약으로 삼았다. 흑인과 아시아계 등 소수 민족들이 출신과 거주지에 상관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할로넨은 각종 노동조합에서 법률 자문역을 맡다 77년 헬싱키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국회에 진출한 것은 79년. 이후 할로넨은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세력을 바탕으로 원내에서도 인정받았다. 특히 90년대 들어 법무장관 보건장관 외무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사민당의 간판 여성 정치인이 됐고 차기 총리감 또는 대통령감으로 지목됐다.

핀란드는 유럽연합(EU) 내에서 회원국간의 이견 조정을 도맡는 등 국가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외무장관 시절 뛰어난 협상능력을 발휘했던 할로넨의 진가가 국제 무대에서 더욱 빛날 전망이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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