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시 '벌거벗은' 지역감정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우려했던 대로 지역감정이라도 부추겨 표를 얻어보려는 언사들이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민국당의 김윤환(金潤煥)창당준비부위원장이 “영남 주축의 정권을 재창출하자. TK(대구 경북)와 PK(부산 경남)가 협력해야 영남정권을 만들 수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주장했다. 역시 민국당의 김광일(金光一)창당준비부위원장은 부산에서 “부산 민심에 맞는 정당이 민국당이다. 이거 실패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죽자”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참으로 몰염치하고 ‘범죄적’인 선거운동 수법이다. 71년 대통령 선거때 대구 수성천변 유세에서 이모씨 등이 공개적으로 ‘경상도 대통령’을 선동하면서 지역감정 불지르기를 하던 방식이 재현되는 것만 같다. 그 선거가 지역대결로 치달은 이래,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지역갈등의 격화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오늘날까지도 회복하기 어려운 지역간의 단절, 국가적 손실을 입었다. 그 타격은 지금도 우리 국민 모두의 상처이자 고통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초선의원이나 신인도 아닌 중진급 정치인들이 그런 망국적인 지역감정 선동에 앞장서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김윤환씨는 집권당의 원내총무 사무총장 대표를, 김광일씨는 국회의원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들은 정치인의 ‘책임과 도의’를 지각할 만한 인사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90년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왔던 ‘우리가 남이가?’ 소리, 또는 부산초원복국집 사건에서 보았던 치졸한 지역색깔 자극 음모를 되풀이하고 있으니, 연민과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선거 판세가 여의치 않다고 해서 말초적인 지역감정을 자극해 의석을 늘려보자는 식은 그야말로 범죄적인 정치적 한탕주의가 아닐 수 없다. 민국당은 이번 두 창당준비부위원장들의 발언으로 스스로 지역당의 정체(正體)를 폭로한 셈이다. 겉으로는 김상현(金相賢) 조순(趙淳) 장기표(張琪杓)씨 등이 함께하는 ‘전국당’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기실 ‘무늬’만 전국당이요, 영남지방의 의석을 한나라당과 나누어 갖기 위한 지역당임을 드러낸 것이다.

지역감정 자극이 불러오는 국가적 손실, 낭비와 국민의 고통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것을 뻔히 아는 그들이 버젓이 ‘우리 동네 뭉치자’식의 선동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김윤환씨의 경우 시민단체가 미리 공천 ‘부적격자’로 지목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거듭 말하건대 살기 위해서 아무짓이나 하는 자는 ‘범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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