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일요스페셜 '세계는 부패…' 사례만 단순 열거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KBS 1TV가 5일 밤 방영한 ‘일요스페셜-사례분석, 세계는 부패와 어떻게 싸웠나’는 주제의 ‘무게’에 비춰 내용이 산만했다. 미국 싱가포르 홍콩의 부패방지 제도를 소개해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였으나 그 사례들을 단순히 열거하는데 그쳐 시청자들이 국내 실정과 비교 분석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부패 지수는 수 백명의 세계 기업인이 인정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1999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투명성 순위는 99개국 가운데 50위로 매년 추락하는 추세. 50위는 중남미의 엘살바도르보다 낮은 순위다.

‘사례분석…’ 은 이런 실정에 비춰 의미있는 주제를 다뤘으나 우선 해외 사례가 미국 등 3개 지역에 불과했다. 홍콩의 사례가 프로그램의 절반을 넘게 차지해 균형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 홍콩의 부패조사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의 증인 보호나 비디오 신문, 무장수사관 제도 등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한국도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도 왜 효과가 없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수사관이 증인 보호를 위해 취재를 금지하는 장면을 2분여간 보여줬으나 이는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싱가포르의 사례도 마찬가지. 국세청이 납세자와 공무원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전자납부제도나 탈세를 예방하기 위한 분할납부제도 등을 소개했으나, 한국에도 그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특히 한 관계자가 “국가가 국민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 부패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으나 이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특수한 사정이어서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였다.

사례 중 미국의 내부고발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본보기가 될 만했다.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눈총을 주지 않고 공익을 실현한 이로 보는 사례는 조직보호 논리를 앞세우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례분석…’ 은 마무리에서 96년 마련된 부패방지법이 여전히 잠자고 있다는 점만 부각시켜 ‘시스템의 미비’를 탓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우리 사회 부패의 원인에 사회풍조 문제는 없는지와 내부고발자를 보는 잘못된 시선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밝혔어야 했다.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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