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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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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바쁘게 호텔을 돌아다니다 보면 반팔이 오히려 일하기 편하고 건강에도 좋더라고요.”
이 호텔 직원 치고 황씨를 모르는 이가 없게 만든 덕목은 이 밖에도 몇 가지 더 있다.
정식 직원도 아닌 황씨는 이 호텔 700여명의 직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출근한다. 새벽 5시반에 업무를 시작하는 직원 3, 4명의 구두를 꺼내 닦아주기 위해 매일 이들보다 30분 앞서 출근해 온 것.
황씨는 또 무엇이 즐거운지 얼굴에 항상 미소를 달고 다닌다. 그 덕분에 룸메이드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항상 1등은 그의 차지다.
또 하나. 그의 ‘번개서비스’는 서비스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호텔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항상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황씨는 호텔 안이라면 어디서 누가 전화를 하든 2∼3분 안에 달려와 구두를 닦아주거나 수선해준다.
그의 정직함도 널리 알려진 덕목. 10년전 호텔 손님의 구두를 닦다 구두 밑창에 주인도 모르게 깔려 있던 1달러 짜리 몇 장을 발견해 이를 돌려주자 손님이 감동해 호텔측으로부터 선행상을 받도록 해준 적도 있었다.
이 호텔의 직원들에게 이제는 전설처럼 이야기되는 이 같은 서비스정신은 신라호텔 부설 서비스교육원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교육원측은 “황씨는 더 이상 우리에게서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서비스정신을 스스로 체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서비스사례를 전직원들이 ‘벤치마킹’하도록 결정한 호텔측은 2일의 월례조회에서 황씨에게 ‘명예사원증’과 ‘서비스지식인상’을 수여했다.
황씨가 이처럼 이 호텔에서 유명인사가 된 것은 천성 탓이기도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겪은 경험이 큰 계기가 됐다.
전남 완도 출신인 그는 80년대 초 상경했다. 미역공장에서 일하다 별다른 기술없이 상경한 황씨가 처음 시작한 일은 공사장 잡역부. 그는 일을 하던 중 86년 공사장에서 떨어져 부상해 사경을 헤매게 됐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말을 할 정도였지만 워낙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6개월여 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곳 구두닦이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공사장 6층에서 떨어질 때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치 다시 태어난 인생같이 느껴졌죠.”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남들에게 못해줄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니 비록 구두닦이라도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처음에는 구두주인을 기억하지 못해 엉뚱한 배달로 욕을 먹은 적도 셀 수 없었지만 이제는 구두만 봐도 주인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는 황씨는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잠바를 입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히 웃음지었다.
<박윤철기자> 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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