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일수/油價올려 교통난 풀어야

  • 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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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유값이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섰다. 1991년 1월 걸프전에 따른 폭등 이후 최고치이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는 3월 2일부터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하는 교통세를 인하해 국내 유가를 현 수준에서 동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의 연료비 부담만을 고려한 단견이다. 유가정책은 유류의 소비를 절약하고 이용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기 정책 목표와 비전에 따라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한국의 휘발유 값 수준은 북해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들 국가는 휘발유 값을 비싸게 유지해 자동차의 운행을 억제하고 환경오염 비용을 원인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물가관리 차원에서 저유가 정책을 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전인 1996년 휘발유 값은 실질가격 기준으로 1981년의 절반 이하 수준이었다. 지난 2년간 교통세를 인상해 휘발유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아직도 1981년의 73%수준이다. 더욱이 지난 20년간 실질소득이 5배 이상 높아졌음을 고려할 때 소득에서 차지하는 휘발유 값의 비중은 엄청나게 낮아졌다. 결국 휘발유의 과도하고 비효율적인 사용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당 연간평균주행거리는 2만5000㎞로 일본의 2.3배, 미국의 1.4배에 이른다. 연료효율이 높은 경승용차(1000㏄ 이하)의 보급률도 이탈리아의 12%, 일본의 29%, 영국의 55%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국제 원유값은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전망이다. 2010년대 후반이면 지금보다 자동차수가 2배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장래에도 교통 포화로 산업 및 국토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며 에너지를 다량 소비하는 현재의 교통체계를 그대로 이어갈 것인가.

휘발유 값 인상은 운전자들의 자동차 이용을 억제시키고 보다 연비가 높은 차량의 구매를 유도할 것이다. 차량운행이 감소돼 교통사고와 체증이 줄어들고 주차난을 완화시키며 교통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외에도 도시생활 환경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는 자동차 배출가스로 인한 환경공해를 감소시킨다.

예를 들어 10년간 점진적으로 휘발유 값을 2배 수준으로 인상하는 장기목표를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소비자들은 대중교통이용을 늘리고 불요불급한 운행을 줄이며 적응해 나갈 것이다. 영국은 실질가격 기준으로 연 5%씩 유가를 인상하고 있다.

98년 기준 교통세는 전체 국세의 10%를 넘어섰다. 이번 교통세 인하조치로 연간 1조원 정도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결국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다른 세원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외국 연구결과에 의하면 휘발유 값에 대한 단기 수요탄력성은 0.1∼0.5, 장기적인 수요탄력성은 0.6∼1.2 정도로 매우 크다. 유가 인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소비자들은 휘발유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뚜렷하게 반응한다.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휘발유 값을 장기적으로 2배 인상하면 소비를 5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휘발유 소비의 감소는 한국 경제의 취약한 에너지 의존 구조를 개선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국에서는 금년 들어 유류의 소비자 가격이 전년대비 50%나 인상됐다. 트럭 운전사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동부지역에서는 난방용 연료값이 급등해 아우성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당장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국가의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방향에 따라 접근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우리의 유가정책도 보다 거시적이고 일관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경기지표나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단기처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전일수(미 일리노이주립대 방문교수·전 교통개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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