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직대통령에 ‘줄대기’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총선을 앞둔 정치판 돌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다. 곧 창당할 민주국민당 지도부가 김영삼(金泳三·YS)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을 찾아 지원요청을 하는 모습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애쓰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 정치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나라당의 공천파동이 몰고온 낙천자 등의 세규합 움직임은 정치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들이 YS에게 하소연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제4신당이 얼굴을 드러냈고 이에 놀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까지 YS를 찾아가는 이상한 모양이 연출됐다. 영남 표밭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국당이 ‘땅 따먹기’를 하는 꼴이 됐으며 영남 출신 전직대통령, 특히 YS가 ‘상종가’를 치는 희한한 바람이 분 것이다.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개혁은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망국적 지역감정에 근거한 정당정치 틀을 바꾸고 1인 보스에 의한 권위적 당 운영체제를 민주적으로 전환시키자는 것 아닌가. 바로 그것을 성취하려고 시민들이 나섰고 권위적 보스정치 추종자들을 바꿔보자는 열풍이 분 것이다.

그러나 민국당의 창당 전야 움직임과 이에 맞서는 한나라당의 대응전략은 이런 바람을 거스르며 구습 구태정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체면도 팽개쳤다. 이회창총재는 물론 ‘마지막 재야세력’을 다짐했던 장기표(張琪杓)씨까지 YS를 찾아간 것은 한마디로 소극(笑劇)이다. 여당인 민주당과 최근 야당으로 돌아섰다는 자민련이 이런 모습을 비꼬며 은근히 반사이득을 취하려는 것도 또 다른 지역감정 부추기기로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정당이 정치개혁과는 영 딴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민국당의 김윤환(金潤煥)최고위원은 엊그제 노태우전대통령을 방문한데 이어 곧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도 찾아 지원요청을 할 것이라고 한다. 공(功)보다는 과(過)가 큰 것으로 평가되는 전직대통령을 이처럼 간절히 찾아다니는 속셈은 자명하다. 그들에게서 무슨 정치적 지혜나 식견을 얻자는 것이 아니라 지역 민심을 건드리는 영향력을 빌려 한표라도 더 낚아보자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나라가 사분오열되는 것보다 당장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건지는 것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YS가 이런 모양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불쾌하다. 아직도 보스정치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정말로 선거혁명을 이루려면 유권자들이 올곧은 표 행사를 통해 이런 치졸한 구정치행태를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