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과 경찰의 떠넘기기

  • 입력 2000년 2월 25일 19시 33분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중국에서 인질로 잡혀 있다 탈출한 조명철씨(대외경제연구원 연구위원)사건에 대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듯한 자세를 보여 신속한 사건 해결은커녕 의혹만 증폭시키고 있다. 재외국민의 신변보호에 앞뒤를 가리지 말아야 할 두 기관이 이처럼 손발을 못 맞춘다면 앞으로 더욱 빈번할 것으로 보이는 그같은 사건에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이다.

귀순자인 조씨 사건은 경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 중국의 현지 납치조직과 조선족 환달러 중개상들의 조직적인 커넥션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윤곽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조씨가 협박범들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한 2억5000만원의 출처와 지급정지 과정 등 핵심사안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국정원측이 조씨문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느니 “중국 현지상황은 우리(국정원)에게 맡기라고 했다”면서 국정원이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를 흘렸다.

그러나 국정원측 주장은 다르다. 수사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하거나 수사축소를 경찰에 지시 또는 강요한 사실이 없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철저히 수사토록 당부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특히 조씨의 중국 출장도 자신들과는 무관한, 대외경제연구원의 연구원 자격으로 이뤄진 것이고 조씨에 대한 동향파악 자체도 경찰청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이같은 주장이 국민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한국인을 상대로 한 납치사건이 7건이나 발생했고 올해만도 이번 조씨 사건을 포함에 이미 두 건이 발생했다. 중국과의 인적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앞으로 유사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국에서 발생하는 납치 테러 사건은 혹시 북한측과 관계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에 어느 다른 지역 사건보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국정원은 대공 차원에서도 경찰과 철저한 공조수사에 나서야 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마치 국정원의 ‘소관’인 것처럼 사건 초기단계에서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잘못이다. 중국 현지의 상황 파악을 담당해야 할 경찰청 외사과가 일선 경찰서의 수사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그것도 문제다.

범죄도 급속히 국제화되고 있는 추세다. 인터폴이나 해당국가와의 수사공조는 이제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는 남북한 대치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어느 한 기관의 책임만 따질 일이 아니다. 주변국과의 외교적 관계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는 등 총체적인 재외국민 보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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