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독일의 안전교육 실태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독일 본시의 교통법규 위반자 재교육장. 교통법규 위반자 9명이 교통심리전문가로부터 1대1 심리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2년간 교통위반으로 적발돼 14∼17점의 벌점을 받은 사람들. 심리전문가가 과속으로 자주 적발된 한 교육생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별다른 이유는 없고 어쩌다 한번 과속할 때마다 경찰에 적발됐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심리전문가가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파고 들자 그는 결국 자신의 운전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심리 때문에 과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의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교육은 철두철미하게 진행된다.

독일에서는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1∼3점의 벌점이 부과되고 2년간 받은 벌점이 18점이 넘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법규 위반자는 점수에 따라 135분짜리 강의를 2∼4회 들어야하며 45분간의 시험운전도 치뤄야 한다. 이를 모두 거치려면 2∼4주 걸린다. 벌점이 14∼17점인 운전자는 이같은 기본교육 외에도 교통심리전문가로부터 심리테스트까지 받아야 한다.

법규 위반자에 대한 교육은 6∼12명의 소그룹으로 나눠 토론과 실습 위주로 이뤄진다. 교육생들에 대해 자신의 운전습관를 발표하게 하고 또 자신과 다른 교육생의 운전습관을 담은 비디오를 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게 한다.

벌점 18점 이상으로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는 이 모든 교육을 받은 뒤에도 일반 면허시험보다 훨씬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 다시 면허를 딸 수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인명사고를 낸 경우엔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법규위반자에 대한 교육은 물론이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 교통교육도 철두철미하다. 한마디로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 없고’, ‘교육 대상에서 제외되는 국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교통교육을 총괄하는 기관은 도로안전공단(DVR). 이 공단은 자동차회사 보험회사 자동차클럽 등 교통관련 기관들과 함께 매년 교육 목표를 정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모든 국공립 기관과 기업체는 노동조합 등을 통해 1년에 한차례 이상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교통교육을 시킨다. 또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교통 약자(弱者)에 대한 교육은 물론 버스 트럭 중장비 운전기사에 대한 재교육, 교통법규위반자와 음주 및 마약 운전자에 대한 재활교육도 활발하다. 최근 독일 교통당국은 18∼25세의 젊은 층과 65세 이상의 노년층에 대한 교통교육에 크게 관심을 쏟고 있다. 이들의 교통사고율이 다른 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

노년층을 위한 교육은 ‘보행자 교육’과 ‘운전자 교육’으로 나눠진다. 보행자 교육은 하루 1시간 반씩 3일간에 걸쳐 실시되고 주로 노인이 길을 건너는 모습 등을 담은 비디오를 시청한 뒤 토론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운전자 교육은 오랜 기간 몸에 밴 노년층의 운전습관을 바꿔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해결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 460만명에 달하는 65세 이상의 운전면허 소지자(65세 이상의 약 53%)를 대상으로 한다.

도로안전공단 산하 연구소의 안드레아 진페닉연구관은 “노년층의 대부분은 신체 반응속도가 젊었을 때보다 현저히 떨어졌지만 젊었을 때의 기억과 경험으로 걷거나 운전하는 바람에 사고를 당하거나 내기 쉽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은 대학이나 1300여만명의 회원을 둔 자동차클럽 ADAC등을 통해 이뤄진다. 주로 과속과 음주로 인한 사고가 많기 때문에 실제 사고 사례를 들려주면서 그같은 상황에 처했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 ‘역할 연극’을 통해 교육을 시킨다.

<본=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전문가 기고 ▼

독일에서는 교통교육에 참여한 25세 이하의 젊은 여성들에게 공중전화카드를 1장씩 지급한다. 그리곤 ‘만약 남자친구와 함께 밤 늦도록 술을 마셨을 때에는 이 공중전화카드를 꼭 사용하라’고 당부한다.

공중전화카드를 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친구와 술을 마시면 ‘객기’가 발동해 음주운전도 불사하며 멋진 운전솜씨를 과시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차를 타지 말고 콜택시를 부르거나 집에 전화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할 때 이 카드를 사용하라는 뜻이다.

물론 젊은 여성들이 이 전화카드를 사용하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여성 10명 중 1명이라도 이 카드를 실제 사용한다면 충분히 사고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게 독일 교통당국의 발상이다.

독일의 교통교육은 이처럼 세심하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교통교육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 지는 교육자료와 홍보자료가 얼마나 잘 관리되고 활용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의 모든 교통교육 관련 자료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도로안전공단의 맥켄하임시분소는 홍보자료를 포함해 2000여종의 각종 시청각 자료를 관리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브라이튼스타인 교육자료부장은 “연간 약 100만명의 독일인이 이 자료들을 빌려가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독일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8000여명으로 60년대 말 동서독 합쳐 2만명에 육박했던 것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줄었다. 정부가 교통법규와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통교육과 홍보가 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도로안전공단의 분석이다.

문영준(교통개발연구원 박사)

▼ 새천년 운전예절 ▼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도로에서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진입로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얌체처럼 끼어드는 운전습관을 마치 대단한 기술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사람까지 있다.

며칠 전 서울 강변북로에서 영동대교로 갈 때의 일이다. 나는 램프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차들 속에 있었다. 그런데 차례대로 줄을 선 자동차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2, 3차로에서부터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는 차량들 때문에 진입로는 뒤엉켜 엉망이 돼버렸다. 출근시간 때라 여기저기서 ‘빵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끼어드는 차와 끼워주지 않으려는 차량이 접촉사고를 일으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결국 진입로를 타는데까지 30분이나 걸렸다.

끼어들기 ‘얌체족’ 때문에 도로가 엉망이 되는 대표적인 곳은 한남대교 남단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지방에서의 영화 촬영을 위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날이 없다.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정해진 차로를 이용하지 않고 사방에서 깜박이를 켜고 몰려드는 바람에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이 때문에 강남방향으로 직진하려는 차량도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이곳의 체증은 한남대교와 심지어 남산1호터널까지 이어지곤 한다.

내가 최근에 출연했던 영화 ‘박하사탕’은 자신의 인생에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끼어들면서’ 겪는 이야기다. 결국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이 너무도 멀리 이탈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은 자살을 선택한다.

도로에서의 ‘끼어들기’도 예기치 않은 사고와 차량정체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고 운전예절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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