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억지웃음 유도…구태 못벗는 MBC 오락프로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최근 MBC 예능국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최악이다. 한 때 ‘오락 명가’라는 별칭을 얻으며 지상파 TV의 오락 프로를 주도하더니 최근에는 경쟁사들에게 무참하게 눌리거나 자생력 부족으로 속속 폐지되는 ‘수모’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주영훈 최화정의 D-데이’는 생리적인 용어까지 남발하는 저질 토크로 한 달 여만인 이 달초 막을 내렸고, 일본 프로의 포맷을 공식 수입했던 ‘이브의 성’은 우리 방송의 일본 의존도를 보여주는 ‘제 살 깎기’로 일관하다 역시 이 달 초 폐지됐다. 그나마 자생력을 갖춘 ‘생방송 퀴즈가 좋다’는 KBS2가 ‘개그콘서트’를 맞편성하는 바람에 시청률이 절반인 10% 안팎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별 뚜렷한 대책이 없다면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맏형’ 격 프로에 전력을 쏟는 것이 정석일 듯한데 요즘 그 맏형 격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보면 그런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 ‘일요일…’의 코너는 크게 ‘도전! 매트릭스’ ‘육아 일기’ ‘결혼대작전’으로 구성돼있다. ‘도전!…’은 요즘 유행하는 스포츠와 오락의 접목이고, ‘육아 일기’는 이전부터 오락프로에서 주로 다뤘던 유아를 등장시키고 있다. ‘결혼대작전’은 10년 넘게 사용해왔던 몰래카메라 기법을 남녀 연예인들의 구혼 현장에, 그것도 동일 인물에 한 달 넘게 사용하는 ‘구태’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애끓는 감정을 담아내거나 시청자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제목대로 한 달 넘게 ‘작전’을 수행 중인 이 프로는 탤런트 변우민(36)의 집에 카메라를 들이 밀며 그로부터 “이 팬티는 기분이 우울할 때 입고, 저 팬티는 힘이 솟을 때 입는다”는 멘트를 끄집어낸다. 여자 출연자인 탤런트 안문숙의 경우 평소 극 중에서 보이는 ‘저돌적인’ 이미지를 희화화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얼마 전 ‘일요일…’ 제작진 중 한 명은 MBC 옴부즈맨 프로인 ‘TV 속의 TV’에서 “시청자들이 오락프로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은 결국 시청자들이 억지로 수준을 낮추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MBC 오락 프로는 이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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