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지역주의' 부추기나

  • 입력 2000년 2월 14일 19시 31분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우려했던 것 이상이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가 극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대단히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은 가능한 한 지역주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을 찾아내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치권이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이인제(李仁濟)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의 충남 논산-금산 출마로 촉발된 민주당과 자민련의 이른바 ‘텃밭 논쟁’도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본보기다. 아직은 공동여당인 두 정파가 한쪽은 ‘기습 공격’으로 기세를 올리고 다른 한쪽은 ‘절대 응징’을 다짐한다. ‘충청권 맹주’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남의 텃밭에서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 나온다. 설사 현실적으로 충청권 유권자의 특정정당 선호도가 높다 하더라도 이는 전체 충청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소리다. ‘텃밭’이고 ‘맹주’고 지역주의와 함께 사라져야 할 구태 정치의 찌꺼기일 뿐이다.

‘정형근(鄭亨根) 파문’의 후유증도 심각해 보인다. 파문의 본질을 떠나 여야는 이번 파문에 지역주의적 색깔을 덧씌워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려 든다.

‘국민의 정부’를 앞세웠던 이 정부에서도 지역주의가 좀처럼 완화 개선되지 못하는 데는 이처럼 여전히 지역주의에 기반하는 정당정치의 탓이 크다.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공동여당이 실질적으로 붕괴하면서 표를 얻기 위한 지역 나누기는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총선 승리를 ‘최고의 선(善)’으로 몰아붙이는 여야 지도자와 정치권 분위기에 미루어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가 극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저 우려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과열 혼탁선거의 조짐은 뚜렷하다. 반면에 이를 감시하고 지도해야 할 관리체계는 극도로 약화되어 있는 상태다. 시민단체들은 선거법 불복종운동을 공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나 선거관리위원회와 검경은 어정쩡한 자세다. 더구나 검찰은 또다시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열 혼탁이 지역주의와 맞물려 증폭된다면 과연 선거판은 어찌될 것인가. 여야 지도자와 정치권은 선거 치르다 나라를 결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권자들 역시 이번만큼은 정치권의 지역주의 부추기기에 단호히 노(NO)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결국 유권자인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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