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의 힘]지구촌 파고드는 中제품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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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굴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海7)그룹은 작년 12월 26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연간매출액 200억위안(약 2조8000억원) 돌파 축하연을 열었다.

12월 25일까지 집계된 99년 매출액은 268억위안(약 3조7500억원). 그 가운데 냉장고 세탁기 등 제품판매수입이 212억위안(약 2조9600억원)으로 전년보다 50억위안(31%)이나 늘었다. 수출액은 전년의 곱절인 1억3800만달러(약 1700억원). 증가액수나 증가폭 모두 동종업체 가운데 최고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업의 성장속도. 하이얼은 지난 15년간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연평균 81.6%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해왔다.

하이얼은 93년 독일에 진출했고 현재 미국과 일본을 공략중이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냉장고의 60%가 하이얼 제품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36∼180ℓ급 소형냉장고 시장의 20%를 장악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디자인본부를 설치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는 연산 20만대의 냉장고 공장을 건설중이다.

▼美 소형냉장고 20% 점유▼

축하연에서 양즈하이(楊志海) 국가경공업국 부국장은 하이얼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격찬했다. “15년전 147만위안의 적자를 내고 파산위기에 몰렸던 회사가 지금 브랜드 가치만 265억위안이 넘는 세계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중국의 자랑이다.”

중국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브랜드가 없었다. 오히려 중국 시장을 외국 가전회사들에 내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96년이 분기점이었다. 중국 가전업체들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컬러 TV를 시작으로 외국업체들의 아성을 공략했다. 지난해까지 4차례의 TV 가격인하 경쟁으로 외국브랜드들은 중국 TV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베이징(北京)청년보 등 중국 언론은 “민족기업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업체들의 공세는 98년 비디오 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VCDP)시장에서도 벌어졌다. 중국업체들은 VCDP를 출하한 지 불과 2년만인 98년에 무려 7차례나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그 결과 VCDP 가격은 1년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중국 내수시장은 ‘국산품’으로 완전 평정됐다.

VCDP시장 공략이 성공하자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 플레이어(DVDP)시장이 다음 목표가 됐다. 슝마오(熊猫) 둥징(東鼎) 등 중국 DVDP 생산업체 5개사는 지난해말 상하이(上海)에 모여 동맹을 맺고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1월 중순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첫 작전을 폈다. 5개사는 우한시장에 출하된 자사 제품 가격을 동시에 20% 인하했다. 이 동맹의 ‘맹주’로 알려진 친즈상(秦志尙) 신커(新科)사 사장은 “5개사의 가격 공동인하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신문들은 “소비자에게는 복음이지만, 동종업체들에는 큰 압력”이라고 평가하고 “중국산의 성능이 값비싼 외국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중국의 DVDP시장은 파나소닉 필립스 파이오니어 소니 도시바 등 외국업체들이 분할해왔다.

▼가전제품 내수시장 평정▼

중국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공세를 펴지만 그 저변에는 축적된 기술이 뒷받침돼 있다. 컬러 TV나 VCDP도 그렇지만 DVDP는 특히 ‘돌비 디지털 스트레오’라는 고급기술이 요구된다. 중국업체들은 이미 그 기술을 수중에 넣었다.

중국업체들은 또 이동전화 단말기(휴대전화) 개발에도 성공, 그동안 외국브랜드들이 독식하던 단말기 시장에도 올해초부터 도전장을 던졌다.

중국업체와 외국업체의 싸움뿐만 아니라 중국업체 서로간의 물고 물리는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그 결과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졌다. 4차례의 TV가격인하 전쟁 끝에 창훙(長虹) TCL 캉자(康佳) 등이 승자로 떠올랐고 90개사가 간판을 내렸다. 냉장고와 세탁기에서는 하이얼 룽성(容升) 샤오톈어(小天鵝) 등이 강자로 부상했다. 전자레인지에서는 거란스(格蘭仕)가 내수시장을 장악했다. 컴퓨터업계에서는 롄샹(聯想)과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이얼은 99년을 ‘국제화의 원년’으로 삼았다. 중국시장을 평정하고 외국시장에 눈을 돌린 결과다. 중국 대륙에서는 제2, 제3의 하이얼이 준비되고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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