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낮은곳 임한 '장애인의 목사님'

  • 입력 2000년 1월 14일 19시 40분


“기댈 곳 없는 10여명 장애인들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입니다. 작은 정성을 모아주세요.”

11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한 상가건물.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모금함을 든 서한철(徐漢哲·50)목사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려왔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려 서목사를 따라나선 정신지체장애인 강경우군(16)도 한겨울의 날씨가 견디기 힘든 듯 웃음을 잃은 채 연신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서목사에게 맡겨진 강군은 그림자처럼 서목사를 따라다니며 모금운동을 돕고 있다.

▼판잣집서 13년 '한솥밥'▼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 경지지역의 주택가와 상가를 누비며 모금에 나선 것이 1년5개월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강행군’한 것은 10년 넘게 갖은 고난을 함께 겪어온 장애인 식구들에게 번듯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일념 때문이었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40여평 남짓한 낡은 판자집. 입구에 ‘참사랑의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이곳에서 서목사는 갈곳없는 15명의 장애인을 13년째 돌보고 있다.

▼아내까지 파출부 나서▼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인 전남지역과 서울을 오가며 개척교회에서 시무해 온 서목사가 장애인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쏟게 된 것은 10여년 전 한 장애인 부자(父子)를 만난 것이 계기.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와 정신지체를 앓는 초등생 아들이 지하단칸방에서 며칠째 끼니를 거르고 있기에 쌀 한 가마를 갖다줬죠.”

어린 시절 화롯불에 데어 흉측하게 뒤틀린 오른손 때문에 3급 지체장애판정을 받은 서목사는 남들이 보기조차 꺼리는 자신의 손을 ‘고맙다’며 연신 어루만지는 이들을 바라보며 일생동안 소외된 장애인들을 돌볼 결심을 했던 것. 86년 공사장을 돌며 구한 판자와 골재로 지금의 보금자리를 만든 서목사는 이웃에서 맡겨오는 장애인들을 하나둘씩 도맡아 한가족처럼 돌보기 시작했다.

비록 여름에는 한증막, 겨울에는 냉동실과 다름없는 초라한 보금자리지만 서로의 훈훈한 체온으로 아픔을 보듬을 수 있었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고정수입이 없는 서목사로서는 몇몇 교회에서 지원하는 월 100여만원 남짓한 헌금만으로는 당장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20여명 대식구의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다.

▼"보금자리 마련이 소망"▼

“재활용품 수집, 캘린더 영업사원, 참기름 장사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했죠. 신학대학원 재학시절 만나 결혼한 아내까지 파출부로 나선 것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불행은 언제나 잇달아 찾아오는 법일까. 불법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수차례에 걸쳐 강제철거를 당하는 한편 4년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마(火魔)’ 때문에 잿더미로 변한 보금자리앞에서 가족들과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던 기억을 서목사는 결코 지울 수 없다.

“새해에는 식구들이 집없는 설움에서 벗어나 아무런 불편없이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번듯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직 세상에는 훈훈한 인정이 남아 있음을 믿는 서목사의 간절한 기도다. 02-402-5934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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