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여우와 사랑을'/새천년 희망의 메시지 전달

  • 입력 2000년 1월 5일 18시 32분


“86년 여우가 멸종됐다는 뉴스를 듣고 어찌나 서운하던지…. 여우는 할머니가 들려주던 동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동물이었어요.여우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동화를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올해 환갑을 맞은 연출가 오태석씨(61)가 동화를 담은 연하장같은 연극 한 편으로 새 천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2월20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여우와 사랑을’.지난해 5월부터 ‘춘풍의 처’‘부자유친’‘코소보 그리고 유랑’으로 이어진 ‘오태석 연극’의 백미다.

이 연극은 중국 옌벤(延邊) 조선족 아가씨들이 시인 윤동주의 기념관 건립기금을 마련키위해 가무단을 만들어 고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풍경은 1923년 만주 벌판에서 마적단이 출몰하던 아수라장과 다를 바 없다. 택시는 마적단처럼 달려가고, 콩팥이 돈과 바뀌고, 개 한마리 때문에 사람이 죽고….

일자리를 잃고 낙심해 있는 이들은 ‘여우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5백만원의 상금을 준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 만주산 여우를 수입해오기로 한다. 하지만 여우를 사려던 애완견 판매업자의 돌연한 죽음으로 계획은 무산되고 조선족 처녀들은 장기매매의 유혹에 빠져든다.

이 작품은 “분단 50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과연 여우 뿐이겠는가”라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삶 전반을 진지하게 반성하게 한다. 환경파괴 분단문제 등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오태석 특유의 신명과 해학이 넘치는 무대다.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옌벤 처녀들이 읊는 윤동주의 ‘서시(序詩)’와 치악산으로 방사되는 만주산 여우의 힘찬 몸짓은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 주기에 충분하다.1만2000∼1만5000원. 02-745-3966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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