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탠더드]美, 로스쿨서 '프로변호사' 키운다

  • 입력 1999년 12월 10일 08시 19분


미국 로스쿨은 10여년전 방영된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안방에도 소개됐다. 사나운 불독같은 킹스필드 교수의 질문은 교실을 모욕감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지만 학생들은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리걸 마인드’를 갖춰나간다.

로스쿨의 수업은 소크라테스식 수업방식으로 스승과 제자, 또는 학생과 학생이 어떤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면서 답변을 이끌어내는 교수법으로 진행된다. 1870년 하버드대 법대 학장이 된 크리스토퍼 랑델이 법원 판례를 법학교육에 직접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시작된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은 후에 모든 대학에서 채택했다.

판례를 곧바로 수업에 활용하는 로스쿨의 수업방식은 당시 이론 위주의 독일식 법률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학생들은 새로운 교수법을 통해 어려운 법률지식을 쉽게 체득할 수 있고 졸업 후 별도의 수습과정 없이 바로 변호사 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 된다.

로스쿨의 수업은 법원 판례를 철저히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업중에 한 학생이 판례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른 학생이 판례의 법률 조항과 법칙을 설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교수의 끊임없는 질문, 질문이 이어진다.

130년 전통의 수업방식은 요즘에도 변함이 없다. 도서관에서 판례집을 뒤지는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 자료를 찾는다는 점만이 달라졌다. 미국의 한 변호사는 “소크라테스식 수업을 받다 보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참가한 운동선수같은 기분이 든다”며 “오로지 철저한 사전 준비만이 생존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로스쿨은 대학 졸업자가 진학하는 3년 과정의 법과전문 대학원이다. 로스쿨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도 오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미국의 로스쿨은 변호사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와 경험 많은 직장인 출신들을 대상으로 실무 위주의 독특한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의 로스쿨은 변호사 양성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변론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변호사가 되려는 학생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하버드대 동아시아법률연구소 윌리엄 앨퍼드 교수는 “고객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리걸 프로페셔널’로 양성시키는 것이 로스쿨의 목적”이라며 “지독한 훈련을 거쳐 양성된 변호사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많은 변호사들은 로스쿨 시절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대다수 로스쿨들은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중도 탈락시키는지를 자랑스럽게 홍보한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법률고문인 임병규(林炳圭)변호사의 회고담.

“40대에 로스쿨에 진학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으나 1학년을 마칠 때 평균 평점 2.0을 못채워 탈락될 위기에 처했다. 교수들은 나를 제적시키기에 앞서 1차로 해명 기회를 주었다. 교수들이 재판관처럼 둘러앉은 가운데서 ‘나는 정치학 박사로 로스쿨 수업을 따라잡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차 심사결과는 낙제였다.

“마지막 기회인 2차 청문회를 앞두고 ‘변호사처럼’ 준비했다. 한 교수가 내 시험지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나는 재시험을 요구했으나 교수는 내가 받은 다른 과목의 평균 성적을 주겠다고 제의해 이를 받아들인 일이 있었다. 나는 이런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해당 교수의 증언을 요구했다.”

철저한 준비와 증거에 입각한 임변호사의 항의는 이유있는 것으로 인정돼 다시 로스쿨을 다닐 수 있게 됐다.

미국 로스쿨에서 변호사 시험에 대비한 과정은 없다. 변호사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은 두달 가량 학원에서 법률조항을 달달 외워 시험을 통과한다.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경제호황과 국가경쟁력의 이면에는 보다 나은 리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수십만명의 변호사 집단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변호사들의 활약은 법률 분야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많은 변호사들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으로 진출한다. 역대 대통령 41명 중 24명이 변호사출신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힐러리도 변호사 출신이다. 상원 및 하원의원의 40∼60%가 변호사다. 로스쿨에서 단련된 리걸 마인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한다.

한국에서도 한때 법조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미국식 로스쿨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고시병’ 해소와 법조인력 대량 배출을 위해 사시 합격자 증원, 사법대학원 신설 등의 사법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법조인들은 미국식 로스쿨 제도의 도입에 대체로 반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진정한 사법개혁의 방향은 △법률소비자인 국민이 적정한 가격으로 양질의 리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법조인 개개인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윤리적으로 무장된 법조인을 배출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법조인들이 로스쿨을 반대하는 이면에는 로스쿨의 도입으로 급격한 변호사 수의 증가를 불러옴으로써 고수익을 보장하는 독과점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 발표된 2차 사법개혁안은 사법연수원을 국립 로스쿨로 대체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차세대 법조인들을 국립로스쿨에서 동문수학한 선후배로 양성하는 제도에 대한 비판은 벌써부터 무성하다.

미국에서는 175개 로스쿨에서 매년 5만4000여명의 변호사를 배출한다. 고객의 다양한 요구와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철저히 변호사 실무를 익히는 로스쿨 제도의 벤치마킹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뉴욕·보스턴〓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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