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수능마친 高3 “술집-오락실밖에 갈곳 없어요”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9시 07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3학생들은 집밖을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우리 사회에는 대학 또는 사회로 진출해 성인이 되기 직전 단계의 미성년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건전한 놀이공간도 제대로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도 해방감에 들뜬 예비사회인들은 유흥가 등 탈선지대로 사정없이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태▼

23일 오후 10시경. 술집과 여관 등이 밀집해 있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유흥가. 청소년의 야간출입 금지지역이지만 여기저기서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소리를 질러대는 10대 남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청소년 밀집지역인 강남역 부근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에서 만난 한 수험생은 “수능이 끝나 건전하게 즐기려고 해도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술 마시는 일 아니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로에서 만난 D고 3년 백모군(18)도 “친구 4명과 함께 3시간 돌아다녔지만 갈 데가 없었다”며 “오락실에서 1시간 동안 놀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정무렵. 청소년출입이 24시간 금지된 서울 성북구 속칭 ‘미아리텍사스’와 동대문구 청량리 속칭 ‘청량리588’ 등 사창가에서도 10대로 보이는 청소년의 출입이 목격됐다.

▼교육의 공백기▼

수능시험이 끝난 현재 수험생들은 앞으로 특차 및 정시모집 등 대학입시 전형에 지원해야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

논술고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전체 186개 대학 가운데 논술을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대 등 31개 대학에 불과해 면접을 제외할 경우 사실상 추가시험이 없는 상태.

여기에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아 90여만명에 달하는 전국의 고3수험생들은 사실상 ‘학생이면서 학생이 아닌’ 애매한 신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모처럼 힘든 시험을 마치고 불과 3,4개월 후면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 될 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특히 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일선 고등학교의 담임교사들은 특차와 정시모집 등 향후 전형일정에 쫓겨 생활지도는 엄두도 못낸다.

서울 강남 S여고의 한 교사는 “학생부 성적 처리와 특차 원서 작성 등으로 교사들 역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며 “오전에 비디오로 교양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귀가시키거나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으로 생활지도를 대신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학교에서 실시중인 교육 프로그램도 학생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외면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H고 3년 김모군(18)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교양비디오를 상영하거나 강연회 등이 전부”라며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반 남모군(18)도 “대부분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록카페나 노래방, PC방을 전전하며 일부는 술집에도 몰려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와 각 구청 산하 일부 수련관에서 고3학생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용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데다 대부분 일회성에 그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홍보부족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같은 내용을 몰라 일부 강좌는 정원도 채우지 못할 정도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예비대학생을 위한 교양강좌’ 등을 기획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애만 태우고 있다.

▼대책은 있는가▼

YMCA 이승정(李承庭·42·여)청소년사업부장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선 학교와 시민단체의 연대를 제시했다.

시민단체에서 레크리에이션과 인성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에서 이를 수용해 졸업 때까지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부장은 “‘열린학교’의 기능을 되살리면 제도교육의 틀 안에서도 충분히 재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훈·이헌진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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