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Me밀레니엄시대]천재의 전형 '바이런'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영국 문학계의 탕아였던 바이런은 온갖 탈선행위를 저지르면서도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풍자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돈 후안’을 썼다. 이 시는 부분적으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런은 또한 다리를 절룩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 '천재의 전형'바이런 ▼

그가 진정한 불멸의 존재로 남기 위해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훌륭한 죽음이었다. 1824년에 그는 터키에 대항하는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가하여 처음부터 계획이 잘못된 전투를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전투 도중에 그가 열병에 걸리게 되자 부하들이 폭동을 일으켜 그를 버려두고 가버렸다. 그래서 그는 미솔롱기의 늪지대에서 전혀 쓸모 없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런의 죽음은 문화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이런과 그가 살았던 시대는 일탈적인 행위를 저지르며 자신의 의견이 최고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전형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같은 예술가의 이미지는 특히 낭만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2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창조적인 천재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사회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야심적인 예술가가 명성을 얻는 훌륭한 전략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회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천재로 대접받거나 불멸의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채 가난에 허덕여야 하는 운명만은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사회의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행위를 곧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는 낭만주의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이들은 음악가들이다. 18세기말이 되자 음악계에서는 왕이나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을 찬양하는 종교음악이나 왕을 찬양하는 궁정음악과 달리 새로운 음악은 찬양할 대상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작곡가들이 돈을 내고 콘서트를 보러 오는 중산층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다고 해서 돈을 찬양하는 음악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개성이 예술적 가치를 재는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평소에 경멸한다고 주장하던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 순응하는 행위가 예술가들의 유일한 적이 되었다.

▼ "사회순응은 예술의 敵" ▼

그러나 지금은 명성의 의미가 변했다. 바이런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적 개인이 아니라 잡지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이 곧 명성을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명성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와 광고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슈퍼모델이나 영화배우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되었다.

▽필자〓마이클 키멜먼(문학비평가)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5/art-kimmelm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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