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ational]성서-과학 빅뱅론 논쟁

  • 입력 1999년 10월 14일 19시 35분


생명의 기원에 관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제는 성경의 글귀를 곧이곧대로 믿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우주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이론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8월 캔자스주 교육위원회는 진화론을 표준 교육지침에서 제외하기로 표결했었다. 그런에 이 표결을 둘러싼 논란이 하도 강렬해서 캔자스주 교육위원회가 빅뱅 이론마저 표준 교육 지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수십 년에 걸친 천문학 관측 기록과 물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성립된 빅뱅 이론은 약 150억년 전에 일어난 대 폭발에 의해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린 지구를 옹호하는 창조론자들’로 알려진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우주의 역사가 수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이론을 만들어서 책과 팜플렛 강연 인터넷 등을 통해 이를 선전하고 있다.

‘어린 지구를 옹호하는 창조론자들’이 설명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는 먼 은하에서 나온 빛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수천 년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그러나 샌디아 국립연구소의 핵무기 기술자인 D러셀 험프리스는 빅뱅 이론의 토대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방정식을 이용해서 이 문제를 해명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의하면 강력한 중력장이 시간의 속도를 가속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험프리스는 지구가 블랙홀과 관련된 어떤 천체의 중앙에 매우 가깝게 자리잡고 있어서 먼 우주에서 수십억 년이 흐르는 동안 지구에서는 고작 몇 천년이 흘렀다고 주장한다.

한편 험프리스의 이론과는 달리 빛의 속도가 과거에는 무한히 빨라서 아주 먼 은하에서 나온 빛이 극도로 빠른 속도로 지구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그 은하가 수십억 년 전에 생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론도 나와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우주과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대 천문학과의 에드워드 라이트 교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증거도 없으며 험프리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강력한 중력장이 평범한 블랙홀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 라이트 교수는 또한 시간이 가속화되면 빛의 파장이 짧아져서 대단히 위험한 감마선으로 변해버린다면서 만약 그렇게 많은 양의 감마선이 지구를 강타했다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물리학회 회장이며 이원자 입자인 쿼크를 발견한 공로로 90년 노벨상을 받은 제롬 프리드먼은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현대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기원에 관한 지식을 부정하는 행위”라면서 “그것은 커다란 손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캔자스대 우주학과의 홈 펠드먼 교수는 “내가 우주과학 공부를시작했을때는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면서캔자스주교육위원회의결정으로 인해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다른 학자들의 이같은 우려가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캔자스주 교육위원이며 수의사인 스티브 에이브럼스는 빅뱅 이론에 대해 과학적으로 의심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캔자스주의 또 다른 교육위원인 존 베이컨도 에이브럼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우주가 만들어질 때 나도 그 자리에 없었고 학자들도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우주의 기원에 관해 도출해낸 설명은 이론에 지나지 않으며 그 사실을 분명히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진화론에 관한 비판과 아주 흡사하다. 예를 들어 앨라배마주는 생물학 교과서에 “생명체가 처음으로 지구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모든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 이론으로 생각되어야 한다”는 말을 반드시 실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빅뱅 이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 켄터키주의 한 보수적인 지역에서 교육감이 초등학교 교과서 중 빅뱅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풀로 붙여버리도록 명령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번에 캔자스주가 빅뱅 이론을 표준 교육지침에서 제외했다고 해서 일선 교사들이 일반적인 생물학이나 물리학 우주과학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워시번대 역사학과의 빌 왜그논 교수는 교육지침이 주에서 실시하는 시험의 기초로 이용되기 때문에 교육위원회의 결정이 교육내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주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에 관한 관측기록이나 우주배경복사 등이 모두 빅뱅의 증거라고 보고 있다. 또 우주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수소와 헬륨 등 가벼운 원소들이 모두 빅뱅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별과 은하 등 천체의 생성에 관한 학자들의 계산 역시 관측 기록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우주의 나이를 둘러싼 논쟁은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전직 전파 천문학자이며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인 휴 로스는 자신의 책에서 “어린 우주를 옹호하는 창조론자들과 나이 든 우주를 옹호하는 창조론자들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national/101099ka―creati

onism―edu.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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