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39)

  • 입력 1999년 10월 7일 19시 33분


내가 석방된지 이십 여일이 지나갔다. 그리고 갈뫼에서 사 박 오 일을 보냈다. 나는 윤희가 남겨둔 노트며 낡은 화첩들이며 편지 묶음들을 읽으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거기에 내가 잃어버린 바깥 세상의 인생이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 격앙 되었던 감정들은 지금 조금씩 무디어져 가고 있다. 울컥 하면서 명치를 치받던 느낌은 슬픔이나 억울함 같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었고 마치 피부의 감촉 같은 것이었다. 무감동하게 바짝 마른 황야의 돌처럼 굳어 있던 마음 속으로 촉촉한 물기가 번져오는 느낌이었다. 여름날 석양녘에 낮잠을 자고 깨어난 것과도 같이 사람들이든 산과 들의 풍경이든 너무도 선명하고 생생하고 뚜렷해서 낯설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거울 속에서나 자신을 볼 수 밖에 없으므로 나의 두 눈은 화면 이쪽의 렌즈에 지나지 않고 세상은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이 저 바깥쪽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연기 같은 혼령이 너울너울 떠 다니며 남겨진 자신의 껍질인 육신도 내려다보고 소통할 수 없는 가족이나 다정한 사람들과 이웃들을 아무런 판단도 없이 그저 보고있는 것처럼. 감기약을 많이 먹고 신경이 바늘 끝 모양 곤두서서 손가락도 간간히 떨리고 아랫배에 불안하고 초조한 안달이 실린 것 같이 잠시도 몸을 한 곳에 붙이기가 두려운 느낌. 자신의 숨소리조차 무엇을 집는 손 동작 하나까지 세세히 의식이 되는 몸과 마음의 분리 따위가 지난 며칠 동안 계속 되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삼 개월은 지속되리라 한다. 갈뫼에 와서 윤희의 숨결과 접하면서 나는 상대방을 얻게 되었다. 상대를 통해서 나는 여기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독방에 처박혀 있던 것은 오현우가 아닌 천사백 사십사 번으로서, 악조건 속에서 살아 남을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사람의 존엄성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자의식이었다. 나는 이제 상대를 통하여 세속의 길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감옥에 있던 때가 바깥 시간으로 보면 바로 얼마 전인데도 아득하게 수 십년 전의 일처럼 생각 되었다. 십팔 년은 순간처럼 기억 되었다. 밀짚 모자의 테로 묶인 옛날 영화 필름 같이 똑같은 장면들이 토막토막 끊겨서 기억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유년시절의 꿈을 되살려 내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요술 눈썹을 달게 된 고대 중국 사람처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의 부질없음과 허위를 지금 보고 있다.

다른 날처럼 아침을 먹고 우리 집 마당을 벗어나 겨울을 보낸 마른 풀 사이로 파릇파릇 새 풀이 돋아나기 시작한 오솔길을 내려와 보람이네 집으로 간다. 나는 간밤에 몇 가지 생각을 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이제 늦었지만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정희의 딸이 되어 있을 은결이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며 그 아이에 대하여 뭔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생각들이었다.

어서 오쇼, 아침은 자셨소?

마루에 나와 앉았던 순천댁이 말했다. 나는 운동복 차림이 아니라 처음 올 때처럼 외출복을 입고 있어서 그네는 곧 다시 물었다.

어찌… 어디 가시는갑소?

예, 읍내 나가서 볼 일 좀 보려구요.

오메 잘되았네. 우리도 시방 뭘 살 것이 있는디.

제게 적어 주십시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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