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이재수의 난」감독 박광수

  • 입력 1999년 7월 8일 19시 17분


한국영화 사상 최고 수준의 제작비 32억원. 그러나 상영 2주간의 서울 관객은 6만명 남짓. 영화가에서는 이 정도면 흥행참패로 친다. ‘이재수의 난’얘기다.

88년 ‘칠수와 만수’이후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아온 박광수 감독(45)이 3년간의 침묵을 깨고 연출한 영화. 그러나 관객들은 그를 외면했고 평론가들은 그를 버렸다. 심지어 “영화가 뭔지 오해하고 있다”는 혹평까지.

그는 이제 어떤 ‘섬’으로 가고 싶을까.

―자신의 작품을 자평한다면.

“5일 장모와 아들(초등학교 4학년)이 봤는데 요번엔 재밌다고 그러더라. 할리우드류의 ‘이야기 중독증’에 빠진 사람들은 어려웠겠지만 내 작품중 쉬운 편이고 재미도 있다고 본다. 논리보다는 이미지 전달에 신경을 썼는데 결과에 만족한다. 한국에서 제주도는 그야말로 변방 아닌가. 100년전과 현재를 연결해 우리와 동북아시아를 펼쳐보고 싶었다.”

―제작비와 흥행에는 관심이 없나.

“솔직히 신경쓰지 않는다. 상당히 재미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칠수와 만수’(서울기준·약7만4000명)가 흥행에 실패하는 걸 보고 아예 그 길을 포기했다. ‘…전태일’(23만여명)은 관객이 들었지만 운이 좋았던 거고. 이전에도 그랬지만 내 영화는 상업영화, 대중영화가 아니다.”

―당신은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자칭한다. 당신이 말하는 작가주의란 도대체 뭔가.

“시장이나 흥행의 논리에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거다. 외국에도 난해한 작가주의 영화많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래도 보는 사람은 본다.”

―그렇다고 혼자 즐기는 개인소장용 비디오도 아닌데…. 32억원은 1년 한국영화 제작비의 10%에 가깝지 않은가.

“외국에서는 더 어려운 영화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만들려면 50억원은 있어야 했다. 프랑스 군함의 출현 등 당초 시나리오에 있던 몇장면은 제작비 문제로 촬영에서 뺐다. 프랑스에서 진행한 믹싱과 필름 현상 등 후반 작업에서 비용(2억6000만원)이 꽤 들었고 시대극이라 미술비(5억6000만원)도 적지 않았다.”

―비판적인 비평이 야속하지는 않은가.

“뭐 그런 것에 신경쓰면 자기 길을 잃어버린다. 3억원정도 들여 모노드라마로 만들라고? 무식한 소리다. 영화평론한다는 친구들이 영화사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공부를 너무 안한다. 이해도 못하면서 재미없고 불친절하다며 욕하는 건 문제가 있다. 상업영화가 아닌데 왜 자꾸 그 잣대로 할퀴나.”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포기했다거나 영화가 무엇인지 오해하고 있다는 극단적 평가도 있는데.

“평론가들이 작품 자체를 보지 않고 자꾸 돈과 연결시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할은 돈이 얼마 들었냐가 아니라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어려운 영화는 어려운대로, 쉬운 영화는 쉬운 방식으로 서로 다른 잣대를 통해 읽어줘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스크린쿼터 문제로 삭발도 하고 영상원의 보충강의도 있어 바빴다. 이번 주부터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놀 생각이다. 20세기도 끝나가는데 영화 자체는 무언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야지. ‘…전태일’도 그렇고 너무 과거에 매달려 있었다는 느낌도 있다. 새 작품에서는 99년의 요즘 서울을 담고 싶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