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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3일 1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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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격자란 바로 바거스의 자동차 앞좌석 밑에 설치돼 있던 작은 검은 상자였다.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사고 당시의 상황을 충실히 기록한 이 상자가 사고 당시의 충격이 전문가들의 분석보다 훨씬 컸으며 에어백은 1차 충돌에서 펴졌다가 곧 줄어들어버렸기 때문에 2차 충돌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밝혀주었던 것이다.
감시 및 진단 모듈(SDM)이라고 불리는 이 상자는 제너럴 모터스사가 1990년부터 자사의 자동차에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너럴 모터스는 최근 SDM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올해 생산된 자동차에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델은 충돌 당시의 충격 크기와 에어백의 작동 여부는 물론 충돌 직전 5초 동안의 상황을 기록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포드사 역시 자사의 자동차에 비슷한 장치를 설치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이 사고 기록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려고 준비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고 기록기가 보험금 정산, 사고 관련 소송, 자동차 디자인은 물론 심지어 사고로 인한 부상자의 치료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현재 제너럴 모터스사를 상대로 자동차 사고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에드워드 리치 변호사는 “앞으로 사고 관련 소송에서 SDM에 기록된 자료는 현재 친자 확인 소송이나 살인 사건 재판에서 DNA 감식 결과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료 관계자들은 사고 기록기의 기록을 판독함으로써 교통사고 부상자가 나중에야 증상이 나타나는 심각한 부상을 했는지 여부를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 중에는 사고후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고 당시의 상황에 따라 뇌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 기록기의 존재는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 장치의 설치 및 그 자료의 소유권에 대한 법적인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자동차 회사들은 자사의 자동차에 설치된 사고 기록기의 자료가 소송에 이용되는 것을 꺼려서 구매자들에게 이 장치의 설치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다. 제너럴 모터스에서 안전 장치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로버트 레인지는 이 장치를 통해 “자동차 안전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이 장치의 이용을 장려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너럴 모터스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찰이 SDM을 수거하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SDM을 수거해서 분석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자동차의 소유주가 자동차 사고에 말려들더라도 제너럴 모터스로서는 그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