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규철/王道는 없다

입력 1999-05-04 19:33수정 2009-09-24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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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해괴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시신도굴(屍身盜掘)이란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더니 곳곳의 묘지에 박힌 식칼과 쇠말뚝은 또 무엇인가. ‘희한한 도둑’이 잡힌 후 여권인사 이름이 튀어나오면서 계속 세간의 화제다. 그런가 하면 여당의원들의 이탈로 국회의원체포동의안이 부결됐고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됐지만 찬성표가 더 많았다. 공동정권 내에도 정치적으로 다른 목소리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나사풀린 우리 사회 ▼

그뿐만이 아니다. 재계가 노사정(勞使政)위원회에서 탈퇴하겠다고 결정했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 교원서명운동을 벌였다. 전에 없던 일들이다. 서울지하철 파업, 경찰 상관폭행 및 병역면제비리 사건 등은 이를 심상치 않게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를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기강이 느슨해진 탓인지 도심의 교통질서를 비롯해 갖가지 질서가 엉망이 돼 위험수준에 이르렀다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다 일부에서는 내년 4월의 국회의원총선거를 의식해 선거바람이 솔솔 부는 것 같다. 중부지역의 유명사찰 주변에서는 평일에도 몰려든 수십대의 관광버스를 볼 수 있다. 산행(山行)의 목적만은 아닌 것 같다.

사회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가운데 선거바람이 벌써 불면 앞길은 더욱 힘들어진다. 한국사회에서 선거는 모든 정상적인 절차를 일순에 밀어버리는 마력이 있다.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일선행정이 곳곳에서 뒤틀리면서 비리가 번진다. 정책담당자들도 유권자들에게 인기있는 것만 찾는다. 역대 집권세력이 선거를 앞두고 인기없는 정책은 피해온 것을 우리는 여러번 경험했다. 그런데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는 어떤가. 5대재벌 빅딜마무리, 구조조정 후속조치, 정치개혁 등 모두 논쟁거리요, 인기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렇다고 미룰 수 있는 일들인가.

외국자본가들이 한국투자에 앞서 제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정치적 안정과 노동시장의 안정이다. 한국사회 내부를 유심히 지켜본다는 뜻이다. 과거처럼 선거를 의식해 오늘 할일을 미루다가는 경제가 내년 후반에 가서는 다시 결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많다. 이런 가운데 현정권의 두개의 큰 버팀목이 돼온 공동정권과 노사정위원회에 불편한 기류가 감돌고, 흔들리는 듯한 현상도 보인다. 이런저런 모든 조짐들이 심상치 않다.

현정권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 내년 총선거 승리와 국정개혁완수 중 어디에 더 역점을 두느냐는 것이다. 정당의 속성상, 그리고 집권당의 생리상 총선승리를 뒤로 미루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역대 집권당은 스스로 ‘자기멍에’를 씌우는 버릇이 있다. ‘정권재창출’이란 구호를 내세우고는 이판사판식으로 선거에 임해오지 않았는가.

▼국정개혁 단호하게 ▼

총선승리가 최우선 목표라면 인기와 득표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개혁의 본질은 변질되기 쉽다. 수많은 이익집단에 입에 안 맞는 정책을 들이대면서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름만 개혁이지 내용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공산이 크다. 변질된 개혁은 국정 곳곳에 또다른 거품을 만들어낼 것이 뻔하고 한국사회는 다시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정권이 될 것인가. 말로만 하는 결단이어서도 안된다. 개혁정책을 계획대로 분명히 매듭짓고 그 결과를 선거에서 심판받는 것이 온당한 순서다. 솔직히 말해서 현정권은 우리 사회 기존중심세력과 동떨어져 있다. 출발이 그러했고, 아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국정개혁을 심판대에 올려 지지 여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마거릿 대처 전영국총리가 단호한 의지로 국정을 이끌었을 때 국민은 외면하지 않았다. 흐트러진 사회기강은 민심을 찢고, 거칠게 만들어 끝내는 사회기반을 약화시킨다. 선거 때문에 좋게 좋게 가서 설령 이긴들 그 불행한 결과는 바로 승리한 정당, 그리고 국민에게 돌아온다. 거리질서를 포함해 모든 국정이 올바르게 정상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왕도(王道)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최규철<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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