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재회담 왜 했나

  • 입력 1999년 3월 21일 19시 58분


여야 당직자들의 무분별한 발언과 감정대립이 정치개혁작업의 장애가 되고 있다. 과거에도 일부 정치인들의 상식이하 발언으로 정국이 꼬이고 급기야는 정치까지 마비된 예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같은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17일 청와대 총재회담에서 합의한 ‘큰 정치’는 뿌리내릴 수 없다.

최근여야 총무간에벌어지고 있는 냉랭한 감정대립 양상은 구시대 정치의 일면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한화갑(韓和甲)국민회의 총무나 이부영(李富榮) 한나라당 총무는 정치정상화를 위해 여야간 타협할 것은 타협하고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계속 머리를 맞대야 할 협상 창구다. 그런두 사람이 아예 만나는 것조차 꺼린다고한다. 무슨 이유를 대든, 여야 총무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포기하는 행동으로 지탄받아도 그들은 할말이 없을 것이다.

물론 문제 발단의 책임은 이총무에게 있다. 김대통령의 일산자택을 ‘아방궁’이라하고 제정구(諸廷坵)의원이 ‘DJ암’으로 죽었다고 한 그의 지난 11일 발언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잃었다. 이총무는 총재회담 다음날인 18일, 국민회의측에서 보기엔 미흡한 수준이지만 일단 ‘유감’ 표명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한 한총무의 자세는 더 큰 문제다. 이총무에 대해 “그 사람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니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대화 자체의 거부다. 총재들은 어렵게 정국정상화를 합의했는데 여야총무들은 여전히 감정만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정동영(鄭東泳)국민회의 대변인의 18일 구로을 정당연설회 발언도 마찬가지다. 정대변인은 “이총재가 총재회담에서 정치개혁시기를 ‘상반기’가 아닌, ‘조속히’로 바꾸자고 한 것은 감옥에 있는 이총재의 동생 회성(會晟)씨를 풀어 내 볼까, 자신의 정치생명을 어떻게든 연장해 볼까하는 의도에서 였다”고 했다. 이 발언은 ‘경솔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청와대 총재회담이 있은 바로 그 다음날 야당 총재를 겨냥해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려 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회의가 과연 총재회담 합의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올 봄 정국은 실업문제를 비롯한 경제 사회적인 문제로 시야가 분명하지 않다. 정치권이 어느 때보다 큰정치를 펼쳐야 난국을 헤쳐갈 수 있다. 여야가 미래지향적 국정운영을 실현하고, 상호 동반자로 서로 존중하며, 생산적인 정책경쟁을 펼쳐나가자는 지난 총재회담의 합의사항은 그 때문에 더욱 지켜져야 한다. 구태정치가 재연된다면 총재회담은 왜 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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