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국민은 성금 제대로 쓰이는지 궁금하다

입력 1999-03-09 19:38수정 2009-09-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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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 내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있나요?” 성금을 모으는 언론사나 민간단체엔 가끔 이처럼 불신을 담은 전화가 걸려온다. 이같은 불신은 우리사회의 성금문화를 위축시키고 ‘나눔의 정’을 엷게 만든다. 실직자돕기 북한동포돕기 불우이웃돕기 결식아동돕기 수재민돕기…. 최악의 경제난에 자연재해까지 겹친 지난해의 경우 거리마다 성금모금 캠페인이 줄을 이었고 TV를 켜면 ARS 모금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모금행사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거둔 성금이 모두 얼마인지, 누구를 위해 얼마를 어떻게 썼는지…. 사용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곳은 많지 않다.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성을 보태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돼지저금통을 들고나온 초등학생의 기특한 마음이, 한 달 용돈을 봉투째 맡긴 노부부의 정성이 눈녹듯 사라진다 해도 이를 감독하고 바로잡을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바람직한 성금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취지에서 우리 사회의 성금집행 실태를 살펴봤다.》

한민간단체는 지난 여름 북한동포 및 실직자돕기를 위해 ARS로 9백여만원을 모금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달 중순경 사용내용을 문의하자 이 단체 실무자는 “7월중순 한 지역의 실직자돕기본부에 7백만원, 8월초 방송사에 2백만원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지역 담당자의 말은 달랐다. “돈을 받기는커녕 자체모금한 4백만원을 그쪽에 보태줬다”는 것이었다.

재차 확인을 요청하자 이 단체는 당초 설명을 수정해 “북한동포돕기 단체에 6백만원, 방송사에 2백만원, 노숙자돕기에 1백만원어치의 물품을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실직자가 많으니, 홍수가 났으니, 연말이니까…. IMF경제난이후 성금모금이 급증했지만 일단 돈을 걷고 나면 그것으로 흐지부지된다. 얼마를 거둬 어디에 썼는지 공개하는 단체는 일부에 불과하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한해동안 성금을 모금한 단체중 20여곳을 선정해 집행 내용을 확인한 결과 모금액 및 사용내용을 상세히 공개한 곳은 보건복지부(불우이웃돕기) 구세군(구세군자선냄비) 사랑의친구들(결식아동돕기)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실직자돕기) 한국복지재단(불우어린이돕기) 등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단체들은 “성금관련 장부가 따로 없다”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심지어 “좋은 일에 쓰면 됐지 일일이 공개할 필요가 뭐 있느냐. 우릴 못 믿느냐”며 역정을 내는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모금단체가 모금실태 및 집행내용에 관한 자료관리가 부실한 실정. 행정자치부 재정경제과 강성조사무관은 “성금 실태를 파악해보려고 사회단체나 언론사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상당수가 정리된 자료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다. 언론기관이 모금한 불우이웃돕기성금은 보건복지부로, 수재의연금은 재해대책협의회로 전달돼 사용돼왔으나 사용결과에 대한 총괄적인 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성금 일부 전용

정성어린 성금 중 일부가 기탁자의 취지와 달리 ‘전용’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는 97년에 모금한 1백11억원 전액을 사회복지사업기금에 편입해 34개 항목에 사용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국민성금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물품이나 돈으로 지원한 것은 위문금과 부조금 등 13억여원에 불과했다. 복지부 김태섭(金泰燮)사회복지심의관은 “복지예산이 충분치 못하다보니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복지사업에 성금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재때 거둔 의연금 6백66억원중 2백15억원도 국고와 지방비로 집행해야할 피해복구비로 사용됐다. ‘정부재정을 돕는 수재성금’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성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은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엔 강원 일부지역에서 수재의연금품이 피해주민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의혹이 제기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94년엔 경기 성남시 용인군 화성군 등 40개 시군이 이웃돕기성금을 기관장 판공비 등으로 전용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민간단체도 기탁자의 취지와 다르게 성금을 쓴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종교단체는 지난해 북한동포돕기 등을 위한 한민족공동체성금 1억9백20만원을 거둬 단체 차원의 사회운동기금에 편입시켰다. 기금 사용내용중 북한동포돕기에 관련된 것은 옥수수심기범국민운동본부에 전달한 1천만원 등 일부에 불과했다.

특별취재팀이 지난해 방송국에 기탁된 민간단체의 성금을 알아본 결과 ARS 등을 통해 거둔 성금을 마치 자신들이 직접 돈을 내는 것처럼 기탁해 생색을 낸 단체도 적지 않았다.

■일터지면 우선 걷고 보자

쓰임새에 대한 꼼꼼한 계획 없이 현안이 터지면 우선 성금부터 걷고 나중에 사용처를 고심하는 단체가 많다.

문화방송(MBC)은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에 넘겨주기로 하고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4백12억원(이자제외)을 모금했지만 지난해 9월 80억원을 전달했으며 나머지는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다. 문화방송측은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측이 사업계획을 제출하는 대로 나머지 금액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억2천9백만원을 모금했으나 모금행사를 너무 크게 벌인 탓에 모금액을 경비로 다 써버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사례는 주먹구구식 성금모금의 전형이다.

■대다수 단체가 공개의무 무시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성금을 집행한 후 그 지역 일간신문에 사용내용을 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어기면 징역 또는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 단체가 공개의무를 무시하고 있는데도 처벌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공공기관인 한국통신조차 지난해 ARS 성금모금 30건 중 21건이 허가를 받지 않았는데도 전화회선을 설치해줬다.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정무성(鄭茂晟)교수는 “모금은 쉽게 하되 사후관리는 엄격하고 투명하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강철희교수는 “모금단체는 모금내용과 집행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해야 하며 국민도 내실있고 정직한 단체에 성금을 내는 것이 올바른 성금문화를 정착시키는 길이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오명철사회부차장 이기흥(지방자치부) 박현진(경제부) 윤종구(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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