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각제 「말꼬리 싸움」

  • 입력 1999년 3월 4일 19시 37분


내각제 개헌 문제에 관한 여야,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자세가 정도(正道)를 벗어나 빗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내각제를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권력의 중심축이 어디로 가느냐, 정당 구조는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달렸으므로 정치인들이 당략적 ‘이해관계’에 빠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 문제는 정당 및 정치인만의 이해관계나 운명을 넘어 실로 국가적 명운을 건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헌법을 바꾸는 일 자체가 가벼운 일도 아니려니와 그 결과도 국민의 삶과 운명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중차대한 내각제 개헌 문제가 3일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는 마치 여야간 정치적 줄다리기나 신경전의 소재로 전락한 느낌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대명제를 앞에 두고 개헌 여부를 진지하고 엄숙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숱한 국정현안을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그 아까운 시간을, 내각제의 본질 문제도 아닌, 그것을 꼬투리 삼은 당략적 쟁투로 허송했다.

국민회의 의원은 내각제의 ‘기수’인 국무총리를 겨냥, “국무총리실 산하 공보실이 누구를 위한 홍보실인가”라며 국정홍보는 팽개치고 내각제 홍보나 하고 다니느냐는 식으로 따졌다. 발언제한시간이 다 끝난 이후까지도 자민련 의원들과 입씨름을 벌였다. 자민련에서도 두명의 의원이 나서서 내각제 개헌주장으로 일관했다. 그 개헌의 당위성이나 필요성 보다도 “내각제가 안되면 공동정권에 잔류할 명분이 소멸된다” “자민련이 내각에서 철수하면 국정운영이 되겠느냐”는 식의 으름장 위협이 앞섰다.

한나라당과 소속의원들의 자세도 이상하다. 대통령 중심 직선제라는 당론과는 달리 공동정권 내부의 분란을 부추기기 위해 움직이는 양상이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한 소속의원은 “99년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고 당선된 현대통령의 임기는 2년”이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의원은 “당론과는 달리 나만은 내각제를 지지한다”고 밝힌 의원도 있었다. 원론적으로 왜 어째서 내각제가 필요하다는 논지에 앞서 그저 ‘시끄러운 장터의 횡재’를 겨냥하는 식이다.

이 점 이회창(李會昌)총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며칠전 기자회견에서 ‘내각제 문제는 공동정권측이 구체안을 내놓으면 그때 가서 대처방안을 밝히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총재가 ‘구태(舊態)정치’와 다른 정도의 정치를 보이겠다면 ‘한나라당 당론은 바뀌지 않았다. 내각제는 왜 어떤 점에서 나쁘고 국민에 해로우니 반대다’라고 밝히는 것이 옳다. 아니면 내각제를 포함해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제도인지 살펴본 뒤 당론을 다시 확정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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