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DJ경제개혁의 걸림돌

  • 입력 1999년 2월 28일 19시 56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숨가쁘게 달려온 1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 경제회생과 재도약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굳이 환율 주가 금리같은 금융지표나 생산 소비 투자 등의 실물경제지표를 들먹일 것도 없다. 한때 정크본드 수준에 머물렀던 국가신용등급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13개월만에 투자적격으로 올라선 것만으로도 한국의 저력은 유감없이 증명되었다.

▼ 엇갈리는 1년 평가 ▼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아 지난달 26일과 27일 이틀동안 서울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주제의 국제회의를 개최한 것도 이른바 ‘DJ노믹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당성과 유효성을 검증받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현정부의 경제개혁 방향과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대부분의 외국 언론과 경제전문가, 국제금융기구들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한국이 IMF관리체제 극복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했고 이를 세계에서 가장 힘차게 밀고 나가는 지도자임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위크는 1월25일자 ‘한국경제는 진정 회복되고 있는가’라는 기사에서 “한국은 위기의 터널 끝에서 한가닥 빛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정치적 불확실성과 노사불안, 삐걱대는 빅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금융부실, 소비와 투자 침체, 날로 심화되는 분배의 양극화 등이 경제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DJ정부 1년을 되돌아볼 때 그 어느 분야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경제개혁이다. 지난 30여년간 누적된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한 기업 금융 노사 공공부문 등에 대한 대수술이 단행됐고 시장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각종 규제의 과감한 철폐도 뒤따랐다. 다시 해낼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도 되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노믹스는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고 적잖은 갈등을 빚고 있다.

김대통령은 오늘의 경제위기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 이같은 국정운영의 기본철학과 이념은 총체적 개혁의 목표와 기본방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정부 출범 1년이 지났으나 그같은 국정이념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날 때 보다 체계화되고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있다. DJ노믹스의 개혁방향에 대한 비판이 좌우(左右) 양측으로부터 고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정책결정과정 정비를 ▼

재계는 정부가 시장경제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때때로 정치논리에 따른 위험한 정책결정을 하고 있다는 불만을 털어놓는다. 빅딜은 ‘자율로 포장된 타율’로, 금융기관 합병과 구조조정은‘신(新)관치 강화’로, 노사관계는 시장주의 원칙을 벗어난 조합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에선 DJ노믹스가 신자유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부(富)의 불평등 분배와 국제적 예속의 길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에는 일면의 타당성도 있지만 분명한 오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를 설득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혁을 앞장서 이끌어야 할 개혁주도세력의 책임이다. 어쩌면 그들은 민주적 시장경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적 의사결정내용에 관한 이념인 자유주의와 그 절차에 관한 이념인 민주주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개혁에의 국민적 의지와 공감대를 하나로 묶어내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언뜻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지만 환경과 경제주체간 관계의 복잡성, 기득계층의 저항과 대중의 무관심, 고통분담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 폭넓게 퍼져있는 도덕적 해이, 전통적 사회문화가치의 왜곡과 혼돈 등이 개혁을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

현대사회에는 국가주의적 통치이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잠재해 있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솔직하게 접근해야 한다.

김용정〈논설위원〉yjeo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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