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승영/콜롬비아 대지진 이후

입력 1999-02-06 20:22수정 2009-09-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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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각기 타고난 운명이 있을까. 그렇다면 필자가 주재하고 있는 콜롬비아는 좀 험한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마약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데다 반세기 동안 지속된 내전의 피비린내를 거두고 평화의 길을 닦으려고 몸부림치던 중 이번엔 대지진이란 천재지변을 당했다.

1월25일 오후 1시2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던 중이었다. 갑자기 몸이 핑 도는 듯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웬 어지럼증?”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그네를 타듯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지진이었다. 수도 보고타에서 1백50∼2백㎞ 떨어진 이 나라 중서부 4개 주요 도시를 리히터 6.2도의 지진이 강타한 것이다.

직감적으로 피해가 엄청나게 클 것으로 느껴졌다. 서둘러서 피해 도시의 하나인 페레이라시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 다섯 가구의 피해 여부를 알아보았다. 지진발생 후 통신이 두절되어 애를 태웠지만 다행히 하루 뒤 복구되어 전화통화에 성공, 모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가장 피해가 큰 아르메니아시는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가지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생존자들은 이렇다할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가족을 찾아 이곳저곳 땅을 파내며 “아마 지옥도 이 보다는 나을 거예요” “핵폭탄이라도 터진 줄 알았어요”라고 울부짖었다.

이번 지진으로 2월초 현재 사망 9백50명(많은 외신기자는 사망자수가 2천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 부상 4천여명, 실종 5천여명 그리고 이재민 30만여명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금세기 들어 콜롬비아 최대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대형참사가 일어나자 선진국들은 재빨리 구호의 손길을 보내왔다. 그러나 피해지역으로 통하는 육로가 모두 끊겨 항공편으로만 구호 물품을 수송해야 하는 교통문제와 운영상의 미숙 등으로 이재민에게 구호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식량과 식수 부족에 지친 이재민들이 슈퍼마켓이나 구호품 보관창고에 난입해 물건을 약탈해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유 한통, 빵 몇봉지를 들고 뛰어나오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극도의 혼란을 틈탄 절도행각이 극성을 부려 개중에는 상점이나 주택에 들어가 TV 비디오 가구 등을 들고 나오는 파렴치범도 있었다.

그러나 콜롬비아 정부와 우호국들의 발빠른 노력으로 폭력 발생 닷새만에 어느 정도 질서를 되찾았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대한적십자사, ㈜대우의 현지 부인회 등이 의약품과 식량 등을 전달했다.

이번 지진의 피해지역이 커피재배 지역이어서 콜롬비아는 향후 수년간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며 피해 복구에만 적어도 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지난달 초 정부와 게릴라 단체의 첫 공식 평화회담이 개최됨으로써 반세기만에 평화의 길이 열리려는 때에 예상치 못했던 강진 때문에 콜롬비아 전체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재난에 휩싸인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6·25전쟁 참전으로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고 막강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콜롬비아가 빠른 시일 내에 내전과 지진의 피해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기회에 한국에서도 많은 온정을 모아 50년 전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승영 (주콜롬비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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