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南北 민간교류]브로커의 24시

  • 입력 1999년 1월 3일 20시 34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민간 차원에서의 남북교류 협력사업이 크게 늘면서 대북 중개인(브로커)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왕성하다. 이들은 투자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남북을 연결하고 있다. 남북이 아직 정치적으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 교류와 소통을 가능케 하는 채널이 돼 뛰고 있는 것. 그러나 역작용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활동이 음지에서 이뤄지는데다 중개인들도 능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고의적인 기만까지 서슴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서 보듯이 국내정치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남북관계를 긴장과 위기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브로커들의 활동과 양태를 파헤쳐보고 대응책을 알아본다.》

★브로커의 24시★

“오늘밤엔 청진 애인이나 만나고 와야겠구먼.”

이른바 대북(對北)브로커인 중국 옌볜의 조선족 김모씨(45). 자치주정부 관료 출신인 김씨는 자가용을 몰고 북한을 제집 드나들듯 오간다. 북한내에 무역회사 법인을 갖고 있어 북한 방문 허가는 언제든 받을 수 있다.

정보기관 공작원 못잖게 역동적인 대북브로커의 세계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있다.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를 북한 권력핵심층과 연결시켜주는거물급은 주로 베이징(北京)이나 미국 일본에서 활동한다. 이들중엔 북한 방문이 자유로운 해외동포로 학자나 사업가가 많다. 북한 권력 핵심층과 인연이 닿는 빨치산 출신 인사의 친인척 후손도 꽤 있다. 남북교류와 신뢰구축 등의 순수한 의도를 갖고 활동하는 브로커도 많지만 남북 양측에서 이중간첩 의혹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북한은 대남사업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베이징의 로비스트를 활용한 공작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중소 기업이나 투자자,이산가족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들 중엔 전직 조선족 관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경제일꾼’들이 먼저 브로커들에게 이런저런 물건이 있는데 남한 기업체를 찾아달라고 접근해 오기도 한다. 적당한 남한 업체를 물색해 △기업체 소개서 △여권사본 △방북 내용 등을 북한에 보내주면 신변안전각서와 함께 초청장이 팩스를 통해 날라온다.

중개가 이뤄지면 공동 사업자로 직접 참여해 물품이 오갈때마다 중개수수료를 뗀다. 하지만 접촉 주선만 해주고 커미션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산가족 상봉주선에는 추진비를 포함해 5천∼3만달러까지 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북이나 면담 주선 커미션이 20만달러까지 치솟기도 한다.

브로커들은 한국인의 방북을 제의하기도 한다. 옌볜의 한 조선족 사업가는 “현지돈으로 3천원(30만∼50만원)만 주면 컴퓨터 조회를 해도 문제 없는 중국인 신분증을 만들어줄테니 관광 명목으로 함께 북한에 가 투자견학을 하자는 제의를 숱하게 받는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이슈추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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