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 86/YS의 몰락]노동법 날치기파장

입력 1998-11-19 19:05수정 2009-09-2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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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밤이 지난 뒤인 96년 12월26일 오전6시를 기해 강행된 노동관계법 날치기 처리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노동법 날치기 처리는 범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한보비리 사건까지 겹치면서 문민정부는 급속히 무력해져갔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정부 여당내에서도 노동법 날치기 처리가 가져올 파장을 정확하게 인식한 사람은 드물었다. 정권은 이미 경직될대로 경직돼 있었다.

그나마 노동법 날치기 처리의 폭발적인 위험성을 비교적 냉정하게 경고한 인사 가운데 한사람이 신한국당 노동법 개정 6인소위 위원이었던 최병렬(崔秉烈)의원 정도였다.

6인 소위의 멤버는 최의원 정영훈(鄭泳薰)당정책조정위원장 이강두(李康斗)의원, 그리고 국회 환경노동위원이었던 이강희(李康熙) 김문수(金文洙) 이신행(李信行)의원이었다.

여권 핵심부가 연내 노동관계법 개정안 국회처리 방침을 굳힌 직후 6인 소위 첫날 회의가 열린 12월17일.

노동부장관 출신으로 6인 소위에 합류한 최의원이 회의를 주재하던 이홍구(李洪九)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날치기를 할 겁니까. 이대표는 정기국회 대표 연설 때만 해도 ‘날치기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날치기를 하지 않는다면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법이 뭡니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도 여야 동수인데다 위원장도 야당 소속입니다. 또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한다 해도 여당이 (과반수에서) 몇 석이나 많다고 통과를 자신하겠습니까.”

이대표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정영훈위원장이 “자민련은 복수노조 허용조항만 빼면 찬성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자민련 끌어들이기를 제안했다.

당시 이동찬(李東燦)경총 회장이 야당총재를 차례로 예방할 때 김종필(金鍾泌)자민련 총재가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이 정위원장의 설명이었다.

회의는 먼저 자민련의 정확한 진의를 확인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끝났다. 회의 직후 국회 본회의장.

복도에서 커피를 마시던 최병렬의원은 김종필총재의 비서실장인 이동복(李東馥)의원이 지나가자 거듭 진의를 확인했다.

이의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청와대가 이미 노동법 개정을 약속했기 때문에 개정안 내용에 대해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의원은 어차피 청와대의 법안 통과 의지가 확고하다면 복수노조 유예를 받아내는 게 현실적이라고 자민련은 생각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지만 12월19일 김총재의 오랜 참모인 최각규(崔珏圭)강원도지사의 자민련 탈당선언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자민련은 이를 여권의 자민련 와해공작으로 간주하고 반발했다. ‘자민련 끌어들이기’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돼버렸다.

그렇다고 노동법 연내 통과라는 목표가 바뀔 수는 없었다. 12월20일에 열린 회의에서 ‘복수노조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수정안이 마련됐고 이홍구 대표가 김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이상득(李相得) 당시 신한국당 정책위의장의 증언.

“이홍구대표가 ‘6인위의 수정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복수노조를 3년간 유예하는 안이었다. 그래서 6인위 위원들을 상대로 일일이 확인했는데 모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진념(陳稔) 노동부장관을 만났다. 12월24일 저녁 강경식(姜慶植) 재정경제원장관 사무실에서였다. 진장관은 개인적으로는 ‘복수노조 2년 유예’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어차피 경제에 도움을 주려면 3년이 좋다고 했다. 대신 복수노조 유예로 노동자들이 불리하게 됐으니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최종안이었다. 그날밤 극비리에 수정안 인쇄작업에 들어갔다.”

이의장은 이날 청와대에 새 노동법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대책을 세울 것과 파업에 대한 단호한 대책을 세우되 ‘유사시 군투입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극비 보고서를 올렸다.

같은 날 노동법 개정작업에 관여해오던 청와대 박세일(朴世逸)사회복지수석 비서관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나흘전 쯤 이홍구대표가 이수성(李壽成)총리에게 “복수노조 허용조항을 연기하면 어떻겠느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하더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박수석은 곧바로 이의장과 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두 사람 모두 부인했다.

다음날인 12월25일 박수석은 이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이총리도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박수석은 이의장에게 항의했지만 이의장은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복수노조 유예가 필요하다는 게 당의 판단이다. 그리고 나 혼자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한 박수석은 청와대 의전실에 다음날 아침 대통령 독대(獨對)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다음날은 노동법 날치기 D데이였다.

박전수석의 술회.

“노동자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들어가는 등 사회적 저항이 격렬하던 때였습니다. 이대표와 점심을 같이 했는데 이대표가 ‘복수노조를 그냥 한 1,2년 정도 유예할 걸 그랬나’라고 합디다. 아무런 이해가 없었던 거죠.”

박수석의 눈에 노동법 날치기는 한마디로 ‘낡은 경제 패러다임’과 ‘낡은 정치 패러다임’이 결합한 쿠데타였다. 그는 아직도 정치 경제의 낡은 패러다임이 결탁해 문민정부의 ‘마지막 개혁’에 저항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박전수석이 말하는 ‘낡은 경제 패러다임’은 그해 중순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개발시대의 생산성 향상논리’였고 ‘낡은 정치 패러다임’은 재벌들의 정치자금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집권여당의 ‘수구세력’이었다.

다시 박전수석의 증언.

“40여년의 낡은 제도를 바꾸는 대역사인 노동법 개정문제가 청와대에서 처음 논의된 것은 정확히 96년 2월15일이었다. 내가 대통령에게 노동법 개정의 필요성을 건의하니까 김대통령은 ‘사실 정권운영에 부담이 돼 못했지만 길게 보면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임기 초부터 하고 싶었는데 안됐다’고 하셨다. 당시 대통령과 얘기한 골격은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공동선(共同善)을 만들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먼저 제도개혁, 그러니까 법을 개정하고 난 뒤에 문화의식 개혁을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제위기론이 확산되고 8월에 경제팀이 바뀌면서 달라져버렸다.”

노동관계법 개정작업은 ‘마지막 개혁’의 분위기가 충만한 가운데 시작됐다는 것이 박전수석의 설명. “96년 3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4·11총선 사이에 발표하기로 얘기가 돼 있었지만 총선을 앞두고 발표하면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해 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김대통령은 개혁의 모양새까지 고려했다.”

총선 직후인 4월25일 김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노동관계 개혁방안 보고대회’를 주재했다.

“과거 권위주의시대 산업화시대의 낡은 노사제도와 관행으로는 기업의 번영과 국가발전은 물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 또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김대통령이 ‘신(新)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는 순간 박수석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예감했다. 그러나 상황은 박수석의 예감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경제상황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은 ‘생산성 논리’에 밀리기 시작했다.

박전수석의 이어지는 설명.

“경제위기론이 확산되면서 96년 8월에는 한승수(韓昇洙) 재정경제원장관과 이석채(李錫采)경제수석을 중심으로 경제팀이 바뀌었다. 10월에는 경쟁력 10% 올리기 운동까지 전개되면서 개발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이를테면 임금이냐, 생산성이냐의 논쟁이었다. 낡은 패러다임은 임금을 낮춰 생산성을 올리자는 것이었고 우리는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결국 생산성 향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특히 이수석의 브레이크는 박수석이 “사실 경제팀이 바뀌지 않았으면 10월에 노동법 개정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할 만큼 강력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발족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위원장 현승종·玄勝鍾)가 무려 6개월 동안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민정부의 ‘마지막 개혁’이라던 노동법 개정은 정부안 입법예고→야당 및 노동계 반발→신한국당의 정부안 뜯어고치기→국회 날치기→문민정부 출범 후 최대의 파업사태로 치달았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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