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교황즉위 20주년

  • 입력 1998년 10월 15일 19시 08분


84년5월 교황으로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첫날 저녁 5공시대 한국의 현실을 몸소 체험할 기회를 가졌다.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론을 할 때 인근 성균관대 학생들이 평화시위 보장을 요구하는 야간시위를 하자 경찰이 쏜 최루탄 냄새가 강론장소에 스며든 것이다. 교황은 여러번 재채기 끝에 가까스로 강론을 끝냈다.

▼일찍이 겪지 못했던 경험을 하며 교황은 말로만 듣던 한국의 인권상황을 실감했을 것이라는 게 당시 강론현장을 지켜보던 많은 관계자들의 생각이었다. 89년10월 세계성체대회 참석차 두번째로 내한, 한국과는 역대 어느 교황보다 인연이 깊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늘로 즉위 20주년을 맞는다. 전임 요한 바오로 1세의 34일 단명과 비교할 때 금세기 최장수 기록으로 전세계 신도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가톨릭 신자를 비롯해 많은 세계인이 현 교황의 즉위 20주년을 축하하는 것은 단순히 오래 재위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각종 메시지를 통해 인권과 정의를 강조하고 공산주의를 완강하게 반대하며 소외된 인류를 찾아 나서는 그의 순례행진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려 84차례에 걸쳐 1백18개국을 순방하며 그가 던진 메시지는 세기말 전환의 시대를 맞는 현대인에게는 ‘복음’이 아닐 수 없다.

▼교회적으로 중요한 제3의 밀레니엄과 21세기의 시작을 앞두고 전쟁과 기아가 계속되는 지구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교황의 존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교황은 2000년을 대희년(大禧年)으로 선포하고 ‘화해와 일치의 시대를 열자’고 호소한 바 있다. 그의 평화와 희망의 순례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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