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김경달/맥빠진 노숙자 취업상담

  • 입력 1998년 9월 21일 19시 13분


서울역 광장의 풍경이 바뀔 수 있을까.

밤새 몰아치던 빗발이 긋기 시작한 21일 오전 10시반 서울역광장.

‘점심식사와 숙소 일자리를 제공해 드립니다’라는 서울 복지관연합회 명의의 현수막이 걸린 컨테이너의 노숙자 상담소 앞에 노숙자 김모씨(45)가 상기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비가 흥건한 광장을 피해 역사 처마밑이나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시간.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김씨 외에도 30여명의 노숙자들은 신상카드를 작성하고 상담을 하느라 분주했다.

이날부터 서울시가 노숙자 자활지원책의 하나로 신분증을 발급하고 시설입소를 시작한 탓.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은 다른 노숙자가 ‘뭐하러 거기 가 있냐’며 빈정거렸지만 김씨는 오히려 ‘일자리라도 얻으려면 뛰어야지’라고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노숙자들은 모두가 김씨처럼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그러나 상담 진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몇몇 노숙자들이 제기한 의문에 신통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정말로 보장해 줍니까.” “꼭 신분을 밝혀야만 합니까.”

석달째 춘천의 가족과 연락도 끊고 매일 막일을 찾던 김씨도 처음과 달리 상담을 마친 뒤에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공공근로사업을 연결해 준다는 얘기만 있네요…. 새벽 5시반까지 서울역에 나와야 일을 나갈 수 있다는데 시설에 들어가면 어쩌지요. 택시 타고 다닐 순 없잖아요.”

노숙자 50여명이 모여 있는 맞은편의 사랑의전화 복지재단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벌써 8개월째 노숙자 신원파악과 일자리 알선을 하고 있는데 서울시가 뒤늦게 나와 중복된 일을 하고 있으니….”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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