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최종현회장의 화장 유언

  • 입력 1998년 8월 30일 20시 11분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조장(鳥葬) 풍장(風葬)을 하기도 하지만 화장(火葬)은 토장(土葬)과 함께 가장 오래된 장례방식이다. 기원전 1000년경 그리스인들이 전사한 병사들을 화장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동양 불교에서는 범어(梵語)의 ‘자피타’가 다비(茶毘)로 음역될 만큼 유래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문무왕이 ‘서역의 방식대로 불로 태워 장사하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화장의 역사는 오래됐다.

▼현대식 화장은 1912년 ‘묘지 화장 화장장에 대한 취체규칙’을 만들면서 시작됐으나 일제강요에 대한 반발과 뿌리 깊은 매장 선호의식 탓으로 정착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71년 7%에 불과했던 화장률이 이제는 25% 안팎으로 늘어날 만큼 화장에 대한 국민의 의식은 변하고 있다. 묘지면적이 2백75㎢로 학교용지(2백19㎢)보다도 넓고 공원 체육용지(1백28㎢)의 배가 넘는 상황에서 당연한 의식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타계한 최종현(崔鍾賢)SK그룹회장이 자신을 화장할 것은 물론 값싸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토록 한 유언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온다.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를 생각할 때 화장은 당위(當爲)지만 실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고인을 문상한 상당수 사회지도층 인사도 ‘화장실천’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니 장묘(葬墓)문화개선의 큰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불교 다비의식에서는 마지막에 영혼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발원하는 ‘환귀본토진언(還歸本土眞言)’을 외면서 끝낸다. 삶과 죽음이 육신보다 정신의 문제임을 생각하면 굳이 매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장례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필요한 때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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