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12)

  • 입력 1998년 7월 31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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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다 ⑫

―오늘은 심야 영화를 하는 날이에요. 주말이잖아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비어 있는 시간이 난감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한 손을 올려 자신의 뺨에 갖다댔다. 몹시 희고 작은 팔목에 파랑색 보석이 박힌 팔찌가 빛났다.

그 동안 점심을 맛있게 먹게 해준 데 대해 언젠가 답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전화기를 힐긋 쳐다본 뒤 책상 위에 있던 열쇠를 집어올렸다.

밖에 나가니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초가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 장난으로 분무기를 뿜는 것 같은 여린 비를 맞으며 인쇄소들과 편집대행사들이 늘어서 있는 어두운 일방 통행로를 걸어 길 끝에 있는 극장으로 갔다. 극장 안은 훈훈했다. 나란히 앉은 우리의 피부는 차갑고 축축했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 즈음에 유행하던 미스테리 에로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중에 영우가 말했다.

―사장님을 이제부터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요. 둘이 있을 때만요. 그래도 되죠?

영사막 위엔 유부남과의 치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워 진 여자가 더 이상 만나주지않는 남자의 집에 들어가 평화롭게 잠든 아이의 요람에 악력이 가득한 손을 뻗치고 있었다. 신경을 긴장 시키는 음악이 흘렀다. 오빠라니, 황당한 제안이었다. 어린 여자애도 아니고 다 성숙한 여자가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묘하게 흥분되었다. 우리의 몸이 따뜻해 지기 시작하자 그녀의 몸에서 열대의 습한 꽃잎 냄새가 났다. 그녀의 몸이 자꾸 나에게로 기울어지고 커다란 보자기처럼 펼쳐져 나를 휘감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몸의 기류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흡사 그녀에게로 흘러나갔다.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고 실제로 어떤 뒤채임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와 몸을 뒤섞는 느낌에 빠져 들었다.

극장에서 나오니 여전히 조용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촘촘하고 비다운 비였다. 우리는 다시 어두운 일방통행로를 나란히 걸었다. 영우가 서두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영우가 살며시 팔짱을 끼고 몸의 체중을 나에게 기댔다.

따뜻하고 깊숙하게 파고드는, 아무런 경계심도 없는 순진무구한 몸. 어쩐지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얼굴과 머리가 축축하게 젖었다. 속옷부터 적시는 눅눅한 비였다. 나는 차고로 가서 차를 빼내고 그녀를 태웠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빗물을 쓸어 내리더니, 그 축축한 손으로 나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그 돌연한 행위는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쥐고 파먹을 듯이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매우 침착하게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의 얼굴을 닦고 영우에게 주었다. 미흔이 깨끗하게 세탁한 뒤 반듯하게 다림질해 옷에 넣어준 손수건. 영우는 손수건을 펴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부인이 살림을 아주 잘 하시는 분이군요…….

영우는 갑자기 손수건을 구기듯이 와락 손을 닦았다.

―오빠는 언제나 양복 차림에 새하얀 와이셔츠 차림이죠. 벌써 알아보았어요.

그녀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자 이물감과 그로테스크한 흥분이 교차되었다. 우리 사이에 이미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것 같은 숙명적인 근친상간의 느낌…….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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