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권재현/「태풍전야」의 현대자동차

  • 입력 1998년 7월 21일 19시 21분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노사대립으로 21일 이틀째 휴무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첫날 노조집행부의 삭발식과 전직노조위원장들이 84m 대형굴뚝 중간까지 올라가는 ‘고공농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것과는 달리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했다.

농성중인 1만여 노조원들은 오전11시 열린 집회를 마치고는 삼삼오오 공장내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곳곳에 쳐진 텐트안에서 오수(午睡)를 즐겼다.

이같은 표면적인 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대부분 이번 사태가 물리적 충돌이라는 극한상황까지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10년동안 싸워 얻어낸 것들을 한꺼번에 토해냈습니다. 성과급 야근수당 잔업수당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입사9년차라고 밝힌 이모씨(39·승용3공장)는 입사당시 노조의 투쟁이 ‘분배’와 ‘삶의 질’을 위한 투쟁이었다면 이번은 ‘생존’을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2천7백명만 나가 회사가 살아난다면 기꺼이 희생양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해고가 제2, 제3의 정리해고 수순의 첫단계라는 점을 모르는 노조원은 없습니다.” 또다른 노조원의 주장.

이에 대해 회사측은 “이미 더 이상의 정리해고는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약속을 했다”면서 “추가 정리해고에 대한 근로자들의 불안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또 “이미 관리직 25%, 임원진 30%가 퇴직했다”며 “IMF경제난으로 인한 구조조정을 생산직만 비켜가야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노사 양측은 구조조정을 둘러싼 이번 노사대립이 물리적 충돌과 폭력사태로 비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점은 일치했으나 서로가 상대방이 먼저 충돌을 촉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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