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병현/클린턴 訪中과 새역사의 서막

  • 입력 1998년 7월 2일 07시 22분


“하나의 역사 드라마를 연출하는 작업, 그것이 내 임무다.”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준비한 새셔 주중국 미국대사의 말이다. 실로 그것은 하나의 역사드라마의 서막과도 같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고적이 가득하고 당나라를 비롯한 역대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시안에서는 당나라시대 최고의 외국국빈 영접행사가 1천여년만에 처음으로 화려하게 재현됐다.

▼ 인권대결과 求同存異 ▼

그렇게 연출된 무대 위로 최강의 국력을 과시하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등장한다. 1천2백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오늘날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을 출발해 20시간에 걸쳐 장장 1만여㎞를 날아 시안에 도착한 후 가진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 공식방문 첫 행사는 이렇게 역사와 시공을 뛰어넘으면서 연출됐다. 이 행사를 2억명의 미국민과 12억명의 중국인은 물론 50억명의 세계인 전체를 관객으로 CNN카메라가 생중계했다. 실로 장엄한 드라마였다.

무대는 200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오늘의 중국 수도 베이징으로 옮아간다. 지난 토요일 아침 톈안문 부근에서의 공식 환영행사에 이어 약 두시간에 걸친 정상회담 뒤 인민대회당에 등장한 장쩌민 국가주석과 클린턴 대통령은 전세계를 청중으로 한 역사적 협력과 대결을 펼쳤다.

미중 양국 ‘대통령’은 인권 종교의 자유와 티베트 문제를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이면서도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치며 상대방에 핵무기를 겨냥하지 않기로 하고 21세기로 들어서는 세계가 더욱 평화 안정 번영할 수 있도록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갖기로 합의했다.

또한 경제면에서도 양국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2개의 대국으로서 세계 금융의 안정과 세계 경제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고 특히 아시아의 경제회복에 앞장서기로 했다.

한반도 문제도 협의되었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기조에 미중양국이 지지와 협조를 한다는 기본방향을 확인했다. 또 북한 핵문제가 최근 인도 파키스탄의 핵실험에 자극받아 재연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고 4자회담을 진전시킬 필요성에도 양국이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핵비확산문제, 동아시아 금융위기 대처문제 등 국제 현안 처리에서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협력관계는 단기적인 차원이 아니라 21세기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구도 속에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78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이뤘으며 특히 97년 2월 덩샤오핑 사망 후 장쩌민 국가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지도체제가 뿌리를 내려 국내 정치 안정을 이뤘다. 대내적으로 자신감을 갖게된 중국은 대외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자연스럽게 강화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으로서도 현재의 국제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조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더이상 과거의 문제로 미중관계 발전이 장애를 받아서는 곤란하다는 판단하에 21세기를 향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의 이번 공식 방중은 전후 미중관계의 획을 긋는 전환기적 사건으로서 21세기 국제질서를 미중이 주도해 나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한미중 협력관계 강화와 국제질서의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미중간 협력관계 강화는 우리가 21세기를 준비하는데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 두 국가로부터의 협력을 획득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여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요인보다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21세기 새 태동에 주목 ▼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제적 환경의 전망일 뿐이며 실제로 우리 자신이 유리한 외적인 요인과 환경을 현실화하는데 얼마나 준비하고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우리의 운명은 음양이 갈릴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감에 있어 우리에겐 나라 안과 밖을 두루 살펴보는 균형감각이 절실히 요구된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중이 뜻하는 새로운 주변환경의 흐름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이 드라마는 베이징에서 무대를 상하이, 구이린으로 옮겨가면서 3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드라마의 막이 내리더라도 이 드라마의 역사적 함축성은 21세기를 향해 냉엄한 현실로 나타날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병현(주중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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