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콩알 뻐꾸기의 일요일」

  • 입력 1998년 6월 30일 0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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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난지도로 실려 온 장난꾸러기 남매 손이와 온이.

“여기가 어딜까?” 두 아이는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어요. 하지만 쓰레기 봉지 안에 갇혀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 때 봉지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어요. 가만 보니 조그만 가위였어요.

손이와 온이가 구해달라고 손짓 발짓을 하자 가위는 비닐을 부욱, 찢어주었어요. “너희들은 어쩌다 이 난지도까지 오게 되었니?” “블록쌓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방을 청소하다 우리까지 쓸어 버리셨어.”

가위는 혀를 찼어요. “쯧쯧! 아직도 쓸 수 있는 걸 버렸군! 너희들도 걸레를 빨거나 설거지쯤은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두 아이는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누가 바로 옆에서 중얼거립니다.

“나도 아직 더 쓸 수 있어. 공책 열 권은 충분히 쓸 수 있다고. 난 연필이니까.” 연필은 훌쩍 뛰어올라 옆에 있던 국어 공책을 열고 또박또박 글씨를 써 나갔어요. 그러자 공책도 한 마디 합니다.

“나는 너무 억울해. 내 얼굴이 못생겼다고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어. 내 마음은 이렇게 깨끗한데 열어 보지도 않고 말이야.”

얘네들뿐이 아니었어요. 어둠 속에서 갖가지 물건들이 나와 자기 자랑을 하며 떠들어 댔어요. 모자가 빙글빙글 춤을 추고, 크레파스가 밤 하늘에다 그림을 그리고, 신발도 큰 걸음을 걸어 보이며 “봐, 봐! 우리는 멀쩡하다고!”하고 소리쳤습니다….

여명출판사에서 펴낸 ‘콩알 뻐꾸기의 일요일’.

‘전봇대 아저씨’ ‘내 짝궁 최영대’의 작가 채인선씨. 그가 들려주는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 아이들의 고만고만한 이야기. 누룽지 맛처럼 구수하다. 생활 주변의 친근한 소재를 다룬 9편의 순수 창작동화들을 한데 모았다.

난지도로 실려간 손이 온이 남매가 가위며 연필이며 공책이며 크레파스며 신발이며 등등, 함부로 쓰고 버린 물건들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졌다(‘우린 쓰레기가 아니라니까’).

표제작인 ‘콩알 뻐꾸기의 일요일’에선 손이 온이가 외출한 뻐꾸기 시계 대신 시계 노릇을 하면서 시간의 귀중함을 되새기고, 생명이 없다고 무심히 지나쳐버린 사물들의 역할을 되돌아 본다.

항상 따라다녀 귀찮게만 여겨졌던 동생을 꼭 껴안게 되는 ‘원숭이 오누이’, 욕심을 버려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바닷가에서’, 꿈속에 나타난 귀신 이야기를 그린 ‘드라큘라와 마녀와 도깨비와 귀신 모두 다’ 등등.

…, 손이와 온이는 점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자기가 버린 물건들이 나와 욕을 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떠올랐습니다.

“너희들 모두 돌아가면 되잖니?”

손이의 말에 모두들 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우리랑 같이! 우리가 집에 갈 때 모두 데려갈게!”

그 때부터 두 아이는 쓰레기 더미를 뒤져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냈습니다. “한참 쓸 수 있는 걸 버리다니!” 몇번이나 이런 말을 했는지 몰라요. 두 아이는 새벽이 올 때까지 물건을 주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마침 차 한 대가 새벽 안개를 뚫고 손이 온이 곁으로 달려왔어요. 손이와 온이는 주렁주렁 물건을 매단 채 소리쳤어요. “멈춰요. 잠깐만 멈춰요!”

트럭이 멈추자 두 아이는 운전사 아저씨에게 사정사정했어요.

“아저씨, 아저씨! 집에 좀 데려다 주세요. 다시는 물건 함부로 안 버리고요, 엄마 말씀도 잘 듣고요, 방도 안 어지르고요. 또, 또 물건도 아껴 쓰고요. 오늘 학교도 가야 하는데. 으앙! 엄마가 보고 싶어요….”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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