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53)

  • 입력 1998년 6월 26일 07시 16분


다음날 어머니는 여기저기 심란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봉순이 언니는 설겆이를 끝내고 부뚜막에 앉아 누룽지 끓인 것을 퍼서 먹고 있었다. 잠시후,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봉순이 언니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손에는 누룽지가 든 양푼을 여전히 든 채였다.

―준비 다 됐으면 가자.

봉순이 언니는 누룽지 그릇을 움켜 잡은 채로 입술을 물었다. 어머니가 구두를 신고 부엌 앞으로 와서 섰다.

―어서 가자니까

―……

―얘가 또 왜 이러는 거니?

―안되겠어요. 아줌니. 지는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봉순이 언니가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배를 한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의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그래, 못하겠지. 다 큰 걸, 그래 사람이 할 일이 아니지. 그런데, 그런데 못하겠으믄 어쩌겠다는 거니? 난 너 못 받아준다. 내가 너 다른 꼴은 다 봐도 그건 못받아줘.

어머니는 낮고 강하게 말했다. 봉순이 언니는 누룽지가 든 양푼에 시선을 박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너 혹시 아직도 그 건달놈한테 미련이 남은 건 아니겠지?

순간 봉순이 언니의 고개가 푹 수그려졌고, 이어 그녀의 어깨가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봉순아. 아줌마 말 잘 들어라. 니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알지. 내가 왜 모르겠니? 그런데 안돼. 니 나이가 지금 몇이냐? 앞으로 살 날이 대체 얼마나 많이 남았니? 이번 한번만 아줌마 말 듣자. 애 지우고 얼마든지 새 출발 할 수 있어. 이 세상에 좋은 남자도 많아. 너 귀여워해줄 그런 남자, 그런 남자하고 애 낳고 그러고 사는 거야. 너 이번 애 낳아서 또 꼭 니 꼴로 키울래?

어머니가 마지막 말을 했을 때 봉순이 언니의 고개가 잠시 멈칫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봉순이 언니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가자, 제발 속 좀 고만 썩여라. 내가 안된다는 걸 사정사정해서 좋은 병원에 미리 연락해 놨다. 가자

―싫어요! 그건 못해요! 그것만은 아줌니 제발 그것만은!

언니는 울부짖고 있었다. 누룽지를 담았던 그릇이 엎어져 나뒹굴고 어머니의 이마에서도 진땀이 솟고 있었다.

―싫어요! 싫어요! 놔! 놓으란 말이야.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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