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40)

  • 입력 1998년 6월 12일 08시 29분


―형제는 많으니? 부모님은 살아계시고?

어머니가 소녀에게도 미숫가루를 내어주며 물었다.

―아유 말마. 얘 엄마도 딱한게 얘 밑으로 딸을 줄줄이 여섯이나 더 낳았다니까. 나라에서 애들 좀 그만 낳으라구 그래두 시골 사람들 뭐 그 소리 듣나, 지금도 그저 아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니…, 쯧쯧, 물려 줄 땅뙈기 하나 없으면서 아들은 그렇게 낳고 싶은 지…. 아, 입이 그렇게 많으니 두 양주가 뼈빠지게 일해두 밑빠진 독이지 뭐. 얘 너 뭐하니, 어서 주인 아주머니한테 인사드리지 않구?

업이 엄마가 말하자 미숫가루 대접을 들고 골똘히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던 소녀는 여전히 눈을 내리깐채로뻣뻣한 상체를 굽혔다.

―그래, 앉아라. 이름이 뭐니?

―미, 미경이에요….

엄마가 묻고 업이 엄마가 대답하다가 처음으로 소녀가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니?

―임자두 걱정은, 내가 오다가 먹였어

―그래, 그래두 배고프믄 말해라…. 너도 어린 나이에 집 떠나서 고생이겠다마는 어떻게 하겠니? 다 팔잔데. 마음 단단히 먹고 우리집에서 조신하게 살림 배우고 있으면 아줌마가 좋은 데 시집 보내줄께.

소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입술을 악물자 눈에서 거짓말처럼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뺨 위에 검은 땟국물을 그렸다.

―들어와라. 위로 두 아이는 학교 갔다 이따 올거구, 우리집 막내하구 한 방을 써라.

어머니를 따라 소녀가 내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발바닥에 묻은 때가 발등까지 올라붙은 그녀의 두툼한 광목양말이 보였다. 그녀는 먼지나는 먼 길을 온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배를 방바닥에 댄 채로 그림책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주에게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내가 이 공주를 구해보리다.

봉순이 언니는 이제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설사 돌아온다 해도 이젠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둑이고 아무리 배신자라 한들, 식구라고 해놓고, 이모네 집에 다녀오던 길에 모래내 벌판에서 어머니 입으로 그렇게 말해 놓고,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를 벌써 잊었는가 보다. 사람이 사람을 보내고 그리고 잊는다는 일이 어떻게 그렇게 쉬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왕자는 어여쁜 공주의 입술에 키스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짱아 어서 인사 안하구 뭐해?…. 미경이 넌 쉬어라. 이따 저녁이나 안치구. 짱아, 일어나. 미경이 언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앉았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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