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理性 잃은 선거판

동아일보 입력 1998-05-28 19:18수정 2009-09-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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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이 이성(理性)을 잃었다.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 인신공격 흑색선전이 난무하더니 급기야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저질 욕지거리까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현직 대통령을 가리켜 “거짓말의 인간문화재”라느니 “공업용 미싱을 갖다가 드르륵 드르륵 (입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 자민련 한호선(韓灝鮮)강원지사후보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청와대에서 칼국수나 ×먹고 지(제) 아버지 고기잡는 일이나 돌봐 주었다”고 했다고 한다.

상대가 국가원수가 아니더라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망언이고 평범한 일개 시민으로서도 듣기조차 민망한 언사다. 그런 말을 국회의원과 지사후보가 유세장에서 쏟아냈다니 아무리 막가는 선거판이라지만 한도를 넘었다.

도대체 국민을 얼마나 얕보기에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해댈 수 있는지 그들의 양식이 의심스럽다. 그런 수준의 언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지도급 인사라니 나라가 부끄럽다.

뿐만이 아니다. 상대후보 비방은 ‘제2의 대도(大盜) 조세형’이 등장하고 조상을 무참하게 짓밟을 만큼 갈 데까지 갔다. 모처럼 뿌리를 내리려는 미디어선거의 총아로 각광을 받아온 TV토론회에서도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무차별 인신공격과 지엽말단의 말꼬리 잡기가 판을 친다.

신문광고도 ‘7대 불가사의’니 ‘5대 의혹’이니 하는 상대 헐뜯기로 치달으며 흑색선전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거짓말까지 동원한 갖은 저질 언설로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처럼 벌어지고 있다.

표에 눈이 어두워 아무 것도 안 보이는지 몰라도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냉담한 유권자의 이목을 끌어 보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그럴수록 유권자는 등을 돌린다.

저속하고 야비한 언동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심화시켜 결국은 정치권 스스로의 목을 죄게 된다. 선거풍토와 정치문화를 타락시키고 국민정서를 황폐하게 만들뿐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정치인들은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경제난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숨차게 살아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더 이상의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

문제된 사람은 당국에 고발됐고 국회 윤리위 제소와 제명도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현행법의 미비를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결과를 지켜보고자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방법은 저급한 선거운동을 국민이 표로 심판해 그런 사람들이 다시는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선거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유권자들이 갖고 있다. 정치풍토를 법으로 고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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