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검찰의 항변

  • 입력 1998년 5월 20일 19시 36분


“뜨거운 얼음을 만들고, 네모난 원(圓)을 그리라는 것인가.”

외환위기를 수사한 검사가 수사결과에 대한 여론의 비판과 지적을 향해 던진 항변이다. ‘강압수사를 하지 말고, 서둘러서 모든 진실을 파헤치라’는 양립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환란(換亂)의 원인규명이 안됐다” “수박 겉핥기 수사다”라면서 진실발견에 더딘 검찰을 나무란다. 다른 한쪽에서는 “검찰이 욕설을 퍼붓는다” “강압수사의 구태를 반복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같은 지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검찰은 대체로 거칠고 험악하게 수사해온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자백을 ‘증거의 여왕’으로 삼는 안이한 수사관행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범수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명쾌한 증거를 확보, 범죄를 도려내라는 성급한 주문도 가능한 것인가. “돈을 받으셨습니까”라고 점잖게 묻는 검사에게 “예”라고 대답할 피의자가 있을까. 또 ‘한명의 억울한 피의자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려면 ‘열명의 범인을 놓치는’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이제 강압수사와 진실발견의 문제는 검찰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정권과 언론, 일반시민의 검찰수사에 대한 ‘모순되는 주문’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일본의 도쿄(東京)지검 특수부는 중요사건의 경우 보통 1,2년, 길게는 5년 이상 수사를 계속한다. 한두달 만에 모든 진상을 밝혀낼 것을 요구하는 풍토와는 전혀 다르다.

검찰도 발표하고 구속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끝낼 일이 아니다. ‘비리와의 지구전(持久戰)’을 계속해나간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질 때이다.

이수형<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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