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어색한 운동회

  • 입력 1998년 5월 4일 19시 55분


40,50대 이상에게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는 좋은 추억거리다. 당시는 ‘마이 카’라는 말조차 없던 때라 학교운동회가 흔치 않은 가족나들이 기회였다. 요즘 주말과 휴일의 자가용을 이용한 가족나들이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흰색 옆줄이 쳐진 검은 운동팬티를 입으면 날아갈 것 같았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준비해간 도시락을 놓고 둘러앉으면 어린이에겐 최고의 시간이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어제 서울 5백27개교를 비롯, 전국의 많은 초등학교에서 봄철운동회가 벌어졌다. 사전에 각 교육청은 ‘검소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학교측은 대개 어린이들이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대신 평소처럼 학교급식으로 때우게 했다. 특히 학부모들은 일절 학교에 나타나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들이 빵 음료수 등을 마련해주고 간단한 선물도 제공하던 예년과는 판이했다.

▼교육청은 검소하게 하라는 것 외에 구체적 행동지침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이 5월을 ‘촌지없는 달’로 선언한 이후 바뀐 분위기를 학교가 의식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어머니는 등교할 때 딸이 잊고간 머리띠를 전해주려고 학교에 갔다가 교문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학교측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학부모들의 이런 저런 이유를 철저히 뿌리쳤다는 소식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현장에서 촌지를 없애 학교와 학부모간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어쩐지 어색하고 삭막하다는 느낌을 준다. 교사와 학부모를 모두 죄인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소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촌지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이해는 간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동심(童心)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걱정일 뿐이다.

육정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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