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하철수몰 엄중문책을

  • 입력 1998년 5월 3일 19시 32분


서울 지하철 7호선 침수는 안전사고에 대한 무신경과 방심이 불러온 사고다. 비약일지 몰라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지하철건설본부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천재(天災)’라고 말하고 있다. 툭하면 죄없는 하늘에다 책임을 돌리는 강변에 분노와 함께 서글픔을 느낀다. 서울시가 어떤 변명을 해도 이번 사고는 안전을 무시한 부실시공과 늑장보고, 긴급대응체제 부재(不在)가 빚은 인재(人災)다.

사고는 태릉입구역 부근에 있는 지하철 6호선 공사현장의 물막이벽이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중랑천물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면서 일어났다. 관계자들은 5월이 집중호우가 없는 건기(乾期)이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물막이벽을 설치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물막이벽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것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것이 기본상식이다. 그런데도 ‘괜찮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엉성한 물막이벽을 만들어 공사를 강행했다가 사고를 만난 것이다.

늑장보고와 긴급대응체제가 없었던 것도 이번 사고가 인재임을 말해 준다. 지하철이 침수되기 시작한 지 40여분이 지나서야 침수사실을 아는 바람에 초기 대응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침수피해가 11개 역으로 급속 확산되는 등 피해가 커졌다. 침수사실을 알기까지 40여분간 태릉입구역을 통과한 10여대 전동차는 궤도침수를 모른 채 운행했다니 아찔하기만 하다. 탈선사고라도 났다면 큰 인명피해를 불러올 뻔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평소 서울지하철 관리체제가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를 말해준다.

이번 사고로 자동개집표기 열차자동제어장치 통신설비 등 각종 전자설비들이 물에 젖어 1천억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철로와 터널 등에 대한 안전점검 등 7호선 운행재개까지 드는 경비와 서울시민이 겪어야 될 교통난 등 불편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이 모든 피해는 결국 시민들의 부담으로 전가될지 모른다.

당국은 철저한 조사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그래야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물막이벽을 눈가림식으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이 과정에서 모종의 유착은 없었는지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이번 사고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결코 안된다. 구멍뚫린 지하철안전관리체제의 허점을 보완하는 일도 시급하다. 불과 70㎜의 비로 수도 서울의 지하철이 물에 잠겼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다가올 한여름 장마철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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