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하늘에서 보낸 장학금

  • 입력 1998년 4월 2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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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초창기 어수선한 학교 주변을 정리하느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밤 늦게까지 일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렇게 장학금까지 남겨주시다니….”

2일 오후3시 경기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남수원중학교(교장 조규웅·曺圭雄) 교장실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장학금 기증식이 열렸다.

기증식조차 번거롭다며 한사코 마다하는 유족들을 설득해 어렵사리 열린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개교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이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 암투병 끝에 2월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난 초대교장 오순자(吳順子·여)씨. 오씨 가족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연금으로 나온 1억원을 이 학교에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교장선생님께서 96년3월 부임하신 뒤 운동장의 돌맹이를 일일이 골라내고 꽃과 나무를 손수 키우셨는데 이제는 다른 학교에서 견학까지 올 정도가 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정성 들여 창단한 축구부가 3월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좋은 날들을 보지 못하고 떠나신 선생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겠습니다.”

고인을 가까이 모셨던 한춘희(韓春熙)교감의 회고담에 기증식장에 참석한 10여명은 금세 숙연해졌다.

“어릴 때 다리를 다쳐 보행에 다소 지장이 있으셨는데도 늘 정력적으로 학교 일을 하셨습니다. 유족들도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고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모두 어려울 때인데 정말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교사들은 고인이 평소 재래시장에서 산 옷을 10년 넘게 입을 정도로 검소한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오씨의 남편인 黃종태(63·전남양주시장)씨는 “아내는 6개월의 투병생활 내내 자기 몸보다 학교와 제자들을 더 걱정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왕소금’으로 불릴 정도로 검소하고 청렴한 황씨는 말단서기에서 시장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아내의 유지를 잇기위해 얼마간 모아놓은 내 퇴직금 등도 죽기전에 장학금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고인이 재직시절 아끼던 교문 앞 노송의 이름을 따 ‘푸른솔장학회’로 명명하고 소년소녀가장 등 형편이 어려운 재학생 10명에게 ‘고귀한 뜻’을 전하기로 했다.

〈수원〓박윤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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