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신혜/『새 짝궁네 집은 부자니?』

  • 입력 1998년 3월 19일 20시 09분


새학년으로 올라가던 첫날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조카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대뜸 “내 남자짝이 나보고 ‘니네집 부자냐? 몇평이야? 방이 몇개니?’하고 묻기에 ‘우리집은 아파트가 아니고 빌라다 뭐’라고 그랬어요”라고 했다.

어른들은 고녀석 맹랑하군 하곤 웃어버렸지만 요즘 아이들이 첫대면을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 찾는 식으로 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의 초등학교때 연애사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아들은 헐레벌떡 집 현관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분홍색 사각봉투에 든 편지를 내밀었다. 난생 처음으로 여학생에게 편지를 받아본 것이다.

‘상연에게. 솔직히 말해 1학기 처음 들어와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 그런데 너와 명희가 짝이 되고나서 너에게 관심이 갔어. 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의 밝은 미소와 순진함이 마음에 쏙 들어. 천재라는 별명과 명희가 지어준 스타라는 별명도 어울리는 것 같아. 넌 날 안좋아 하겠지. 그렇다고 이 편지 찢지마….’

이런 경우 보통 엄마들이 먼저 던지는 말. “이 아이 공부 잘하니? 얼굴은 예쁘니? 집은 부자니?” 자기 집과 비교해서 수준이 안 맞으면 딱지라도 놓을 심산인지, 아이들의 사귐을 장래까지 밀어붙일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러면 아이들은 이렇게 응수한다. “엄마, 그런 유치한 질문이 어딨어요. 이제 엄마한테는 절대 아무말도 안할거예요.”

상기된 얼굴로 엄마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 아들에게 “글씨 참 예쁘게 쓰는구나. 글솜씨가 제법인데”하고 말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부는 잘하니? 철자법도 안틀리고 또박또박 잘 썼구나. 얼굴도 예쁠 것 같은데.” 아들은 자기가 칭찬을 들은 것처럼 신이 나서 대답한다. “예. 공부도 잘하고 예뻐요. 사실은 나도 그애한테 좀 마음이 끌렸어요.” 더이상의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수준이 격하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좀더 상큼한 대화로 새학년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신혜(서울 송파구 석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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