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61)

  • 입력 1998년 3월 9일 08시 0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29〉

왕자가 돌아온 걸 보고 왕을 비롯해 왕의 신하들, 그리고 왕자를 아끼는 모든 백성들은 더없이 기뻐하였습니다. 왕자의 귀국을 경축하기 위하여 왕은 잔치를 베풀게 하고,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선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한차례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왕자는 왕에게 저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귀국 길에 도적떼를 만나 변을 당했던 일이며, 제가 왕자를 구해 주었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듣고 있던 왕은 몹시 놀라워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호! 흡사 여자처럼 가냘프게 생긴 그대가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니, 왕실의 권위에 두고 맹세커니와, 내 그대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왕은 고관대작이 입는 비단옷 한 벌을 하사하였습니다.

그후 얼마 동안 저는 왕자의 궁전에서 묵었습니다. 왕자와 저는 동갑이었지만 제가 왕자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왕자는 저를 동생이라 부르며 몹시 아껴주었습니다. 잠시라도 제가 눈에 띄지 않으면 왕자는 몹시 허전해 하면서 저를 찾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놀고, 함께 먹고 마시고, 그리고 함께 잤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왕자는 제가 여자라는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였습니다. 왕자가 낮잠에 빠져든 것을 확인한 저는 몰래 혼자 빠져나와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비록 왕자와 함께 먹고, 마시고, 잠을 자기는 했지만 목욕만은 함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저는 왕자가 낮잠에 빠져든 틈을 이용해 목욕을 하곤 했던 것입니다.

저는 옷을 벗고 몸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풍만한 젖가슴이며, 잘록한 허리며, 매끈한 다리를 씻으면서 저는 제 자신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이제 바그다드로 돌아가면 오빠의 품에 안겨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낮잠에서 깨어난 왕자는 제가 눈에 띄지 않자 몹시 허전하여 이리저리 저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끝에 그는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너무나 놀란 저는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가리려고 했습니다만, 이미 늦어 있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저의 알몸을 왕자는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왕자 또한 그 너무나도 뜻밖의 광경에 짧게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목욕탕에서 나갔습니다. 저는 저의 부주의를 스스로 책망하며 서둘러 옷을 입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나와 보니 왕자는 조금 전에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미안하오. 그런데 그대는 대체 누구요? 어찌하여 그대는 알라께서 부여하신 성을 애써 감추려했던 거요?”

“용서하십시오, 왕자님. 저같은 젊은 여자가 먼 여행을 하다보면 갖가지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장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지만 왕자는 그토록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말했습니다.

“그대가 남자든 여자든 달라지는 건 없소.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요, 둘도 없는 나의 형제요. 그러니 이제부터 내 앞에서는 굳이 변장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소.”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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